▲ 죽음을 알고 준비를 한다는 건, 내 생각엔 그것 참 매력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 미리 낙담하고 모든 걸 포기하는 사람, 또 더러는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아니 욕심 사납게 이뤄보려고 하는 이도 있겠지. 난 내 죽음의 시간을 알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족들의 수고를 다루는 드라마도 많은데. 김충순 그림, 켄트지 250X210㎜, 연필, 볼펜,수채.


오늘 저녁 태양이 진 후 나는 침대에 누웠다. 초이와 함께 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여행은 정말로 행복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페리 부케부스호를 타고 라플라타강을 건너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로 건너갔다. 페리를 타고 2시간만 가면 몬테비데오다. 아르헨티나에서 우루과이로 건너갔지만 모든 것이 비슷하다. 스페인어를 쓰는 것도, 도시의 풍경도, 탱고 음악이 가끔 들리는 것도 비슷했다.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몬테비데오의 메인 스트리트인 7월18일 거리를 지나 몬테비데오의 중심인 독립광장으로 갔다. 독립광장 주변은 구시가지다.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신시가지와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고풍창연한 식민지 시대의 옛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 중심에 우루과이 독립전쟁의 영웅인 아르티가스가 말을 타고 있는 기마상이 서 있다.

몬테비데오를 남미의 파리라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과 좌파 정부 사이의 오랜 갈등으로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몬테비데오는 화려한 명성을 유지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배만 타면 쉽게 건너올 수 있기 때문에 마치 나들이가듯 두 나라 사이의 왕래도 많다.

우루과이 사람들은 특히 탱고의 발상지가 우루과이라고 아직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문헌을 보면, 우루과이에서 탱고가 먼저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오랫동안 탱고를 국가 브랜드로 키워갔다. 이제는 누가 뭐라해도,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정신적 뿌리가 된 것이다. 7월18일 거리를 따라 형성된 신시가지에 팔라시오 살보, 즉 살보궁전이 있다. 1927년 건설된 몬테비데오에서 가장 높은 24층 건물이다. 7월에 내리는 눈을 가끔 볼 수도 있는 곳이 몬테비데오다. 남미에서는 칠레 다음으로 안전한 나라로 꼽히는 곳이 우루과이여서 비교적 치안도 잘 되어 있지만, 거리의 블록 하나를건너면 우범지역이 나타난다.

나는 초이와 바닷가를 산책했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바다냄새가 났다. 갈매기들이 등대와 선착장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초이는 두 손으로 내 팔을 꼭 잡았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찾아와 몸이 아프기는 했지만 걸을 힘은 있었다. 그리고 아픈 내색을 초이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가장 좋은 식당에 들어가 오이스터와 바닷가재 요지를 시켰다. 아르헨티나보다 물가가 비싸긴 하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여전히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해안을 따라 걷는 것은 안전하지만 센트로와 해안 사이는 우범지대다. 그러나 아베니다, 즉 큰 길을 따라 걸으면 위험하지 않다. 저녁을 먹고 밤에는 몬테비데오 유흥가로 진출해서 우리는 술을 마셨고 도박장에 가서 겜블러를 했다.

몬테비데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는 몬테비데오에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푼타델에스테로 갔다. 이곳은 특히 아르헨티나 부자들의 별장이 많은 곳이다.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금융전문가들이 물맑고 공기좋은 이곳 휴양지 콘라드 호텔에 모여 만든 것이 우루과이 라운드다. 원래는 푼타델에스테라운드라고 부를려고 했지만 발음하기 어렵다고 그냥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푼타델에스테는 정말 아름다웠다. 해안을 따라 고급 별장과 고급 식당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식사 비용도 상당히 비쌌다. 관광객들이 주로 오기 때문에 음식값이 뉴욕의 고급 식당에서 먹는 것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휴가를 보내는데 비용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초이와 나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갈매기들을 보고 바다를 바라보며 맨발로 모래사장을 산책하기도 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작은 섬이 있는데 이름이 물개섬이었다. 물개들이 출몰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물개를 보지는 못했다.

원래는 하루만 있다가 몬테비데오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이 작은 항구도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일정을 바꿨다. 우리는 사흘을 더 머물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비행기를 이용하여 곧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남극의 얼음이 녹은 물이 이곳까지 흘러들어 청정함을 자랑한다는 푼타델에스테는 조용하지만 화려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도시에도 밀롱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호텔에 비치된 관광안내 책자에서 밀롱가의 위치를 발견했다.

우루과이, 즉 푼타델에스테에서의 마지막 날, 초이와 나는 밀롱가에 갔다. 저녁을 느지막이 먹고 탱고화를 가방 속에 넣고, 밀롱가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밀롱가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비슷했다. 새벽 2시까지 초이와 나는 춤을 추었고 맥주를 마셨으며 음악을 들었다. 내가 맥주잔을 들자 초이는 놀라는 눈치였지만, 곧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제 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간경화 말기니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왔다. 오후에 도착했지만, 집에 오니 해가 저물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그동안 썼던 일기들을 소설 형식으로 정리했다. 오래 전부터 내 삶의 마지막을 기록할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고 나는 그것을 논픽션이 아닌 픽션, 즉 허구가 가미된 형태의 소설 장르로 남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소설은 소설이니까. 허구는 허구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라도 허구인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생의 마지막 잠을 잤다. 오래 자지는 않았다. 2시간 정도 잠을 잔 것 같았다. 곧 영원한 잠을 잘 것인데, 왜 마지막 시간에 다시 2시간이나 잠을 잤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 초이는 가르시아를 통해 다다가 렌트한 아우스트리와 프렌치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의 집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초이는 오늘밤 반드시 그곳에 가서 다다와 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 그래야 그녀의 알리바이가 완벽해지는 것이다. 내가 죽은 후 엄청난 금액의 보험금 수령자가 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에게 조사가 집중될 것이다. 안전하게 보험금을 초이가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죽는 그 순간에, 다수의 목격자들과 함께 초이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나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사가 될 것이다.

나는 예정된 대로 서울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코르도바 거리로 갔다. 그리고 초이는 다다의 집을 향해 갔다. 우리는 집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초이를 꼭 껴안았을 때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만 기억이 난다. 초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의지대로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계획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가능성도 없는 망가진 육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을 병원 침대에 누워 독한 주사약을 맞으며 고통스럽게 보내는 것을 그녀도 원치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내 계획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나의 소설을 끝내야 한다. 허구는 곧 현실이 되고, 또 현실은 어느 순간 허구가 되어 이 세상에서 증발할 것이다. 내 육체는 화장되어 연기로 사라질 것이지만 내 삶은 어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보이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