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연구 결과 철학적 이야기로 풀어


 

   
▲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로저 스크루턴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로저 스크루턴 도서출판 아우라)는 철학자가 와인 생산지를 답사하고 와인문화라는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로저 스크루터는 <칸트>, <신좌파의 사상가들> 등의 저서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영국의 유명 철학자인데 이 책에서는 기존 저서와는 다르게 와인과 관련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제1부에서 자신이 와인에 입문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와인의 기원과 역사, 프랑스 및 여타 나라의 와인을 소개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12년 동안 리서치를 했기에 각각의 와인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제2부에서 저자는 '와인의 의미'를 탐구하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 아가페적 사랑과 에로스적 사랑, 다양한 흥분제, 청교도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술에 대한 태도, 술의 도덕적인 활용 등을 다룬다.

권두부록 '철학자와 와인'은 다양한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저서를 읽을 때 어떤 와인을 곁들여 마시면 좋을까를 이야기하는데, 철학자들에 대한 비평이 흥미롭고 도발적으로 전개된다.

와인은 인류의 문명처럼 오래되었다. 고대인들은 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고 있었는데, 음주를 종교적 제의에 포함해 신을 맞이하는 의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음주에 따른 소란을 숭배자인 인간의 추태가 아니라 신의 행위로 여겨 덮어두려 했다. 그리하여 술은 점차 제의에 의해 길들여져 올림푸스 신들께 바치는 거룩한 봉헌물이 되고 마침내 기독교의 성찬에도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성찬은 일종의 희생제의로서 구성원들이 일체감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결국 신과의 조화를 실현하고 구원을 맛보게 한다.

와인은 문화적 산물이며 와인의 맛에는 오랜 전통과 문화가 녹아 있다. 각각의 와인은 그것이 만들어진 고유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맛을 낸다.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고 토양의 맛만을 강조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무의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의 포도밭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식민주의자에 의해 처음 조성된 이래로 프랑스 역사의 압축판이었다고 한다.

로마시대를 거쳐 교회는 오래된 포도밭에 새로운 묘목을 심고 경작지를 복원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고대의 신들에게 새로운 안식처를 마련해주었다. 고대의 신들에게 성자와 순교자의 옷을 입히고 술로 그들을 추도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해 프랑스 와인은 최고가 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와인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고 서술한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 액체는 우리로 하여금 명상에 들게 하고, 이러한 명상은 영혼에 전달할 메시지를 불러내기도 한다며 와인 한 잔을 놓고 사색의 세계를 펼친다.
쾌활하게 와인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오늘날 술을 두고 오가는 쑥덕공론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며, 문명의 토대가 된 와인문화를 진지하게 변호하고 있다. 277쪽, 1만3천원.

/조혁신기자 mrpen@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