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후문에 서 있던 여자 차장이 고무줄로 묶은 버스표 다발을 한 손에 움켜쥔 채 기우뚱거리며 다가왔다. 곽병룡 상좌는 주머니에서 10전짜리 동전 한 잎을 꺼냈다. 차장은 버스요금 10전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버스표를 한 장 찢어주었다.

 곽병룡 상좌는 버스표를 받아 제복 웃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창가로 다가갔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버스 안은 한산했고, 대여섯 명의 승객이 제가끔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곽병룡 상좌도 빈자리를 잡아 앉았다. 버스는 덜커덩거리면서 소련대사관이 서 있는 보통문 쪽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5거리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보통문이 나왔다. 버스는 보통문 앞에서 신호를 받아 직진하더니 보통강유원지 옆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는 큰길을 따라 안상택거리 쪽으로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조선인민군교예극장 앞에 넓게 나 있는 사거리가 나왔다. 버스는 그 사거리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곽병룡 상좌는 옛날 보통강에 나와 미역을 감으며 뛰놀던 어린 시절을 그려보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여댔다.

 보자, 여기서 우측으로 돌면 개선문 쪽으로 나가는 큰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돌면 류경호텔이 서 있는 봉화거리가 나오겠구나…큰아버지가 영웅거리에 사실 때에 비하면 평양도 참 많이 변했어….

 그는 오랜만에 보는 평양시가지 모습을 이쪽저쪽 살펴보다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거리 복판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안전원이 절도 있게 팔을 뻗으며 신호를 주었다. 버스는 그 수기신호를 받으며 영웅거리 쪽으로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보통강이 흐르는 녹지대 옆에 우뚝 서 있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나왔다. 버스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지나서 계속 직진했다. 이내 혁신거리와 마주치는 사거리가 나왔고, 직진하자 바로 하신거리가 이어졌다.

 곽병룡 상좌는 하신거리 옆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저층아파트와 길가의 상점들, 그리고 탁아소와 유치원들을 바라보며 옛날 평양에서 살 때를 생각했다. 그때는 오마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업고 저 탁아소에도 여러 번 다녀오곤 했었다. 세상 물정을 모를 때라 그런지 그때는 탁아소도 엄청나게 커 보이고 빼곡하게 들어 선 저층아파트들도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었는데 이제 보니 그 건물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신거리 옛집에서 평안북도 도(道) 안전국으로 조동(전보) 되어 갈 때만 해도 큰아버지가 큰 힘이 되어주시곤 했었는데….

 곽병룡 상좌는 광복거리에 살고 있는 큰아버지를 찾아가며 동생들의 앞날을 걱정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요직에 계실 때만 해도 찾아가서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 어른들도 연로해서 동생들한테 큰 힘이 되어 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