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42) 4부. 꽃은, 죽은 나무들의 마지막 폭죽놀이
탱고 (42) 4부. 꽃은, 죽은 나무들의 마지막 폭죽놀이
  • 김진국
  • 승인 2011.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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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한 생각을 하고 같이 하고 있으면서 입 밖으로 말하지 않고 벌벌 떠는 두 사람. 너무나 무섭고 걱정되어서. 난 이야기 내용에 맞춰 무서운 척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피식 웃음이 납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예쁜 여배우들은 상황에 맞춰 슬프게 우는 것 보다 예쁘게 우는 모습을 담아내려고 생쇼를 하다가 어색하게 운다는데…. 지금 내 그림이 어색하게 그 꼴이 난 거죠. 켄트지 290X210㎜, 연필, 수채, 김충순 그림 2011.


초이에게 전화가 온 것은 박 부장이 죽은 후 한 달이 지나서였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환경 적응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일도 하루 이틀 지나고, 1주일 2주일이 지나자 하나의 과거가 되어버렸다. 거리에 나가는 것이 무섭고 탱고바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마음도 보름이 지나자 진정이 되었다.

다다는 매일 밤 라우라와 밀롱가를 순례하였다. 월요일은 살롱 까닝, 화요일은 까치룰루, 수요일은 바카라, 목요일은 니노비엔, 금요일은 쁘락띠까 엑기스, 토요일은 엘베소, 일요일은 뽀르떼뇨 이 바일라린, 이런 식이었다. 밀롱가에 가기 전에는 라우라와 탱고 연습을 했다.
가르시아는 요즘 부쩍 잦아진 한국 취재팀들의 가이드를 맡아서 정신이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한국 취재팀이 아르헨티나에 오면, 부에노스 아아레스에 머물며 탱고쇼가 열리는 극장과 에비타 묘지가 있는 리꼴레따 등에서 며칠 촬영한 후, 북쪽의 산악지대인 살타 지역이나 브라질과의 국경에 있는 이과수 폭포, 그리고 남극으로 건너가는 전초기지인 남쪽 도시 우슈아이아로 간다. 아르헨티나 남쪽지역인 티에라 델 푸에고주의 중심도시인 우슈아이아는 인구 7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남미 최하단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에 항구에는 남극으로 가려는 전세계에서 온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다.

가르시아가 자리를 비워서 다다는 하루도 쉬지 않고 라우라와 둘이서 밀롱가를 갔다. 수요일에는 산뗄모에 있는 밀롱가 바카라에 갔는데, 밀롱가 바카라의 운영자는 한국인 크리스탈이어서 갈 때마다 한국사람들이 몇명씩 눈에 띄었다. 아르헨티나에 배낭여행 온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탱고바에 와서 탱고 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탱고 유학온 한국출신 밀롱게로들도 있었다. 다다와 라우라는 그들과 이미 수차례 다른 밀롱가에서 만났기 때문에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라우라와 한 딴다 추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온지 1년이 넘는 지우라는 땅게로가 다다의 테이블로 왔다. 그들은 아르헨티나식으로 서로의 뺨에 뺨을 대고 베소를 했다. 다다는 샴페인을 주문해서 테이블 위에는 아이스 버켓이 있었다. 샴페인을 아이스 버켓에 넣은지 30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이제 막 꺼내서 마시려는 참이었다. 다다는 지우에게 샴페인 한 잔을 권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단지 반가워서 인사차 자기 테이블로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다는 느끼고 있었다.

"초이, 소식 들으셨어요?"
샴페인 잔을 내려놓은 후 지우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초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다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과 함께 등골을 타고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왜 그렇게 초이라는 이름을 듣고 다다는 놀랐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라우라는 담담했다. 라우라는 아무 말없이 지우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에 초이를 만났어요."
다다와 라우라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초이가 박부장 살해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사건 이후 종적을 감춘 초이에 대한 궁금증은 그녀가 모습을 감춘 것과 비례해서 확대되고 있었다. 라우라는 혹시 초이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꾸 꿈에 초이가 나타난다고 말했고, 라우라가 불안해할수록 다다 역시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지우가 초이를 봤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동시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첫째는 안도감이었다. 적어도 초이가 몹쓸 일을 당하지는 않았다라는 안도감이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서운함이었다. 왜 그들에게는 초이가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밀려드는 생각은, 역시 박부장이 죽은 날 새벽에 있었던 그들만의 파티였다.

다다와 라우라의 머리 속에서 그날의 기묘한 파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필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속에서 이미 수없이 그 필름을 거꾸로 돌려 그날의 파티를 재생하고 또 재생해서 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파티는 한 장면 한 장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이제는 마치 다른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듯, 세 사람이 함께 침대 위에서 뒤엉킨 장면들을 머리 속에서 재생해서 바라보곤 하였다.
"초이가 부에노스에 있나요?"

지우의 입에서 초이에 대한 정보가 더 나오기를 기다리던 다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어디 머무는지 물어보았는데 웃기만 하더라구요."
"어디서 만나셨어요?"
"오벨리스끄 옆에 있는 파스타 집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데, 누가 다가와서 인사를 하는 거에요. 처음에는 몰라봤어요."
초이는 지우보다 조금 늦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거의 1년정도 다운타운 밀롱가에서 맞부딪친 사이였다. 그런 지우가 초이를 몰라봤다니 이상했다. 지우는 샴페인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머리를 숏커트로 짧게 자른 데다가 황금색으로 염색했더라구요. 그리고 얼굴의 반을 가린 하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어요. 아마 두 분도 까샤오 횡단보도에서나 리꼴레따의 백화점에서 마주쳤다면 몰라봤을 거에요"
"혼자 있었나요?" 라우라가 물었다.
"네. 혼자였어요. 12시쯤 되었는데 신문을 읽으며 혼자서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있더라구요."

오벨리스끄에서 꼬리엔떼스 거리로 통하는 블록 모퉁이에 있는 그 파스타 집은 다다도 알고 있다. 오벨리스끄가 보이는 오쵸 데 훌리오 방향으로 야외 광장에 테이블이 펼쳐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로라는 오쵸 데 훌리오는, 도로 건너편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큰,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가로 지르는 길이다.
어디서 숨어 지내는가 생각했던 초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장 중심지에서, 그것도 대낮에 와인을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는 말에 다다와 라우라는 뒤통수를 맞은 듯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이 잘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온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긴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제가 식사를 마치기 전에 인사를 하고 먼저 나가더라구요."
"혹시 우리 이야기는 하지 않던가요?"
모든 것이 궁금한 것 투성이어서 다다는 지푸라기같은 단서라도 찾아보려고 물어보았지만, 그게 전부라고 대답하고 지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가수들의 앨범 재킷 사진이나 영화 포스터 사진을 찍으며 유명해진 사진작가 김우늠(그는 닉네임인 다다라고 불린다)은 교육방송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외주 제작사 촬영팀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간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이드를 맡은 사람은 현지 교민인 가르시아. 다다는 가르시아의 안내로 탱고 공연을 보고 그 숨막히는 매력에 빠진다. 그리고 가르시아의 누나이며 탱고 강사인 라우라를 만나면서 촬영이 끝난 후에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남아 탱고를 배우기로 결정한다.
라우라와 다다는 처음 만나면서 서로에게 이끌린다. 탱고바에서 라우라는 초이라는 한국 여자를 다다에게 소개해 준다. 초이는 탱고를 배우기 위해서 혼자 아르헨티나로 건너왔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는 아르헨티나에 진출해 있는 한국 대기업 지사장인 박 부장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
초이의 말에 의하면, 초이가 대학시절 디자인 과목 수업을 맡은 박 부장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기말고사 성적 관리를 도와주면서 개인적 관계를 맺기 시작했지만 박 부장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결혼 후에도 관계를 이어오다가, 박 부장이 근무하는 기업의 아르헨티나 지사로 발령받으면서 함께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촬영팀이 귀국하고 다다 혼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게 된 날, 라우라와 가르시아 등은 다다를 위해 파티를 한다. 파티가 끝날 때쯤 초이가 나타나고 그녀는 적극적으로 다다를 유혹해서 호텔로 간다.
다다와 초이가 가까워진 것을 보고 질투를 한 라우라는 자신의 일본인 제자인 셀마를 통해 다다와 초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한달동안 부에노스에 머문 다다는, 서울로 돌아갔다가 운영하던 스튜디오 등을 정리하고 3개월 뒤에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1년 예정으로 탱고 유학을 간 다다는 공항에 마중나온 가르시아와 함께 렌트한 아파트로 가서 휴식을 취한 후 그날 밤 밀롱가에 가서 라우라와 탱고를 춘다.
가르시아는 돌아가고 라우라와 단 둘이 아파트로 돌아온 다다는, 자신의 집 앞에서 초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초이는 다다와 라우라가 섹스를 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함께 다다의 아파트로 올라간다. 그리고 아침까지 술을 마신 후, 세 사람이 함께 잔다. 다다가 눈을 떴을 때 초이는 사라졌고, 지난 밤 박 부장이 꼬르도바 뒷골목에서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경찰은 조사 끝에 단순 강도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조사 후 초이는 자취를 감춘다.





<등장인물>


다다 : 유명 사진작가. 방송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아르헨티나에 왔다가 탱고를 본 후 그 매력에 빠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면서 직접 탱고를 배운다.

라우라 : 아르헨티나 현지 교민. 가르시아의 누나. 탱고 강사. 다다에게 탱고를 가르치면서 다다를 사랑하게 되지만 다다가 자신의 제자인 초이와 만나는 것을 알자 질투에 사로잡힌다.

초이 : 정체가 베일에 가려진 한국여인. 한국에서 탱고를 배우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혼자 건너왔다는 그녀는, 라우라에게 탱고를 배우면서 다다를 적극적으로 유혹해 육체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자신을 감추고 다다에게 접근하면서 다다를 혼란스럽게 한다. 한국 대기업의 아르헨티나 지사장으로 있는 박 부장과 동거를 하고 있다.

가르시아 : 아르헨티나 현지 교민이자 방송촬영팀의 가이드. 다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주지만 누나인 라우라 몰래 초이와 은밀한 거래를 한다.

박 부장 : 한국에서 대학강사로 있으면서 자신의 제자였던 초이와 사귀게 되었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이혼한 뒤 대기업의 아르헨티나 지사장으로 오면서 초이와 함께 살다가, 꼬르도바 골목길에서 살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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