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천시당'자기주도 학습'공론화 - 이혁재 정책위원장 인터뷰


 

   
▲ 이혁재 정책위원장이 자기주도 학습의 효과와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자기주도 학습은 단순히 혼자 공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며 공교육의 체계적인 접근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자기주도 학습'. 텔레비전 학습지 광고로 새삼 유명해진 말이다. 그런데 말이 아직도 어렵다.

사전 식으로 풀면 '혼자, 스스로 하는 공부'쯤 될 것이다. 30대 이상 성인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공부가 원래 자기가 하는 거지. 남이 대신해주나?"라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주도 학습이란 말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혼자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이 잇따라 이 자기주도 학습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주목받고 있다.

인천에서 정당이 나서서 자기주도 학습을 공론화하기는 처음이다.

이혁재 인천시당 정책위원장은 "서울시·경기도보다 많이 뒤쳐져 있다. 인천도 하루빨리 자기주도 학습을 정책과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수구 청학동의 한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진보정당과 자기주도 학습, 언뜻 연결되지는 않는 주제다. 그들이 자기주도 학습을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 왜 지금 자기주도 학습인가

이 위원장이 "사회적으로 보면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 때문이에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는 상황이 거대한 사교육 시장을 낳고 키웠다는 진단이었다. 그는 "얼마 전 민주노총에서 소속 조합원에게 설문을 돌렸는데요. 생활비의 평균 30%를 사교육비로 지출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요."라고 말했다.
분석이 이어졌다. "악순환이지요. 혼자 공부하지 못하니까 학원이나 과외수업을 받고 그럴수록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은 떨어지고 그럼 더 사교육에 기대게 되고요. 누가 뭘 가르쳐주지 않으면 결국 도저히 공부를 못 할 지경까지 가는 거에요."
그는 "교육학에선 자기주도 학습이 하나의 교육이론으로 자리잡은 게 20년은 된 얘기에요. 그런데 학생이나 학부모나 선생님이나 자기주도 학습이라고 하면 딱 와닿지 않는 거에요. 여전히. 그래서 인천에서 이젠 이 얘기를 공론화해야 하지 않나 싶어 토론회를 연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민노당 인천시당은 지난 21일 1차로 자기주도 학습 토론회를 열었다. 내일(28일)은 2차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대학입시에서 이른바 전국 '톱 클래스'에 드는 고등학생이 일류대 입시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요"라며 사례를 들었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낙방을 했어요. 사정관이 '공부를 왜 하나요. 재미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물었는데 이 학생이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했다는 거에요. 어릴 때부터 그냥 해야 하니까 한 거지요. 단언하긴 어렵지만 대학입시에서도 자기주도성이 서서히 하나의 평가지표가 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자기주도는 동기부여부터

자기주도 학습, 좋은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모호하다. 그래서 정의를 내려달라 했다.
이 위원장은 "자기 자신이 아주 소중하고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자기주도 학습의 첫 출발"이라고 말했다. 설명이 이어졌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야 자기 현실을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게 되지요. 거기에서부터 공부에 대한 동기가 생깁니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 중에 가장 큰 게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하는 거라고 봐요. 하루 종일 학교다 학원이다 공부를 하긴 하는데 아무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안 해주는 거에요. 그냥 지식만 가르치지요."
그가 다시 부연설명을 부쳤다.
"자기주도 학습은 학생에게 단순히 혼자 공부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야간 자율학습과 전혀 다르죠. 그건 방치에요. 공교육이 체계를 갖고 학생이 스스로 공부를 주도하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줘야 해요. 서울이나 경기도에선 일선 학교에서 이미 자기주도 학습이 하나의 과목으로 정착되고 있어요. 우리 인천도 그렇게 해보자는 겁니다."
이 위원장은 인하대 교육학과 장형심 교수의 21일 주제발표문을 인용해 자기주도 학습이 동기와 인지, 행동 세 가지 요소의 관리라고 규정했다.
학생이 공부에 대한 동기를 가져야 하고 지식을 받아들일 인지능력과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미 오래 전에 자기주도 학습이 공교육에 뿌리내린 핀란드의 경우 한 수업에 선생님이 두 명씩 들어와요. 한 선생님은 수업을 하고 다른 한 선생님은 아이들을 전담하는 거에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동기가 부족한 건지, 인지능력이나 자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파악해서 관리하는 거에요"라고 했다.


▲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

올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10명 중 4명이 과거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최근 조사결과는 자기주도 학습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은 '2011학년도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를 내 서울대 신입생의 42%가 사교육의 도움 없이 공부해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조사 때 비중 32.1%보다 10%가 늘어난 수치다.
이 위원장은 "일본에 아키타현이란 지방이 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쯤 되는 지역인데 여기 사는 학생들이 몇년 전 전국 학력평가에서 도쿄 학생들을 크게 앞질렀어요. 사교육 없이 다들 혼자 힘으로 그렇게 한 거에요. 도쿄는 일본에서 사교육이 가장 번성한 지역이란 점을 생각하면 시사하는 게 많죠"라고 말했다.
이어 "아키타현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나 봤더니 학교 끝나면 전부 마을회관으로 모이는 거에요. 거기 가서 무슨 과외공부하고 그러냐 하면 아니에요. 자원봉사자나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 생활관리를 해줘요. 학생들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길잡이를 하는 거에요. 자기주도 학습이 이상적으로 실현된 곳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일본 아키타현의 사례는 이 위원장이 교육문제, 특히 자기주도 학습을 사회적 의제로 던지게 된 가장 큰 계기다.
그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 거에요. 관건은 교육당국의 의지에요. 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 노력도 필요하지만요"라고 했다.


▲ 더 많은 토론, 현실적인 정책생산 나서겠다

이 위원장은 자기주도 학습정책이 "좌파와 우파의 접점에 있다"고 했다. 진보정당의 정책생산을 맡은 입장에서 나올 법한 판단이었다.
그는 "딱 떨어지진 않지만 보통 좌파는 보편교육을 강조하고 우파는 수월성에 무게를 둔다. 자기주도 학습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대안이다. 공부가 뒤쳐지는 학생은 평균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고 잘하는 학생은 더 잘 할 수 있다. 기본정신은 보편교육에 있지만 효과는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다만 실체있는 정책을 만들기까지는 더 많은 토론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이 위원장은 진보진영의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현실성 부족'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주도 학습이란 화두를 인천 시민사회에 던진 게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 현장에 온전히 뿌리내리기까지 갈 길이 멀다. 앞으로는 실질적 정책생산 작업을 해 볼 생각이다. 새로운 시도다. 자기주도 학습은 교육문제에서 인천 진보진영의 역량을 평가받을 좋은 기회라고 본다. 진보진영이 실체있는 '대안'을 갖고 시민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승환기자 berita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