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삐 다니시다 보면 기럴 수도 있지요. 도(道) 안전국에는 내가 내일 오전 전화로 면직처리부터 하면서 대기발령을 내릴 테니까 길케 아시고 산소에부터 다녀 오시라요.』

 초췌한 형의 모습이 안타까워 곽병호 과장은 고개를 돌렸다. 곽병룡 상좌는 동생이 속으로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의 마음을 달래듯 자신이 하루 더 평양에 머물겠다고 했다.

 『니 말대로 만경대에 들어갔다가 혁명렬사릉으로 갈 테니까 길케 알고 있거라.』

 이튿날 아침 곽병룡 상좌는 동생과 함께 아파트를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중앙계단 쪽에 설치되어 있어 두 사람은 잠시 걸었다.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고층아파트라서 그런지 복도도 넓고 깨끗했다. 연탄아궁이마다 구멍탄이 시커멓게 쌓여 있는 은혜읍의 5층짜리 사회안전부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딴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인구가 남쪽으로만 내려가지 않았어도 그들 가족도 은혜읍에 새로 건설하고 있는 초고층아파트에 입주해 사회주의 조국 건설을 위해 일생동안 땀흘려 일한 보람을 만끽하며 위대한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품안에서 행복하게 살아볼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그 꿈도 접어야만 했다.

 못된 놈 같으니라구…부모 눈에 길케 피눈물을 뿌리게 해놓고도 부족해 또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헐뜯으며 제 동생들의 앞날까지 막고 있어….

 곽병룡 상좌는 어젯밤 동생의 방에서 들은 인구의 기자회견내용을 되씹어보다 동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금시 그들 형제를 1층으로 내려주었다. 곽병룡 상좌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잠시 초고층아파트단지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동생과 같이 창광거리 쪽으로 걸어나왔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큰길 저편에 크고 작은 노동당 부속 청사들이 어깨를 맞대며 서 있었고, 평양역으로 가는 큰길 우측에 고려호텔이 뿌연 안개 속에 꼭대기를 묻은 채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형님, 전 여기서 청사로 들어가 봐야겠습네다. 일 다 보시고 떠나기 전에 저한테 전화 한번 걸어 주시라요.』

 『기래. 날래 가봐라.』

 곽병룡 상좌는 물러서는 동생을 향해 빨리 가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곽병호 과장은 뒷걸음치다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는 바삐 걸어갔다. 큰길가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있는 형을 바라보니까 불현듯 지하에 계신 아버지가 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흐느끼는 모습을 형에게 보이지 않을 듯 보폭을 크게 잡으며 빨리 걸었다.

 곽병룡 상좌는 동생이 또 헤어지기 섭섭하여 흐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도자 동지를 모시고 위대한 조국의 앞날을 설계해야 될 사람이 저렇게 성정이 섬세해서야…. 곽병룡 상좌는 안타깝다는 듯 쯔쯔쯔 혀를 차다 버스정류소 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