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육 30년, 그들에게 길을 묻다1981년 초등입학생 4명 특별인터뷰
   
▲ 올해로 초등학교 입학 30년이 된 1974년생 네 명의 어른들. 그들은"지금보다 30년 전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에겐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뜻이었다. 인천 구월동의 한 국밥집에서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교사 엄희숙씨, 회사원 김재호씨, 주부 조수인씨, 교사 조명철씨. /윤상순기자 youn@itimes.co.kr


1974년생 어른(37세) 넷이 모였다. 인천 송월'국민학교' 1981년 입학동기들이다.

붙잡지 못할 세월이라 했던가. 여덟살 앳되던 얼굴은 중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가 됐다. 1981년은 '인천직할시교육위원회'란 이름으로 인천시교육청이 출범한 해다. 인천교육이 시작된지 올해로 꼭 30년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련한 추억과 생각을 물었다.

'경쟁'이 '이념'이 돼버린 시대, 학교가 학생의 희망이 될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들은 흙바닥 뛰어다니던 저녁 어스름, 어머니의 "그만 놀고 밥 먹어"라는 말의 기억과 정조를 공유하는 세대였다.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면 30년 전과 지금 중 언제를 택하겠는가'란 물음에 그들은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다.

무더위가 일찌감치 찾아온 6월 중순의 어느 날 저녁, 인천 구월동의 한 국밥집에서 그들과 만났다.

30년 전을 택한 그들의 이구동성에는 이유가 있었다.



-눈부신 경제적 발전이 앗아간 것들

사회(사회부 노승환 기자·이하 이름 생략) - 3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는 게 오늘 대화의 큰 줄기일텐데요. 어떻습니까. 그 때와 지금, 뭐가 가장 크게 달라졌을까요.

엄희숙 - 지금도 옛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넓은 학교운동장하고 학교 뒤 동산이에요. 거기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요. 지금은 애들이 밖에서 뛰어 놀지를 않아요. 시간도 없고 생각 자체가 나가서 노는 즐거움을 모르는 게 가장 큰 차이 같아요.

김재호 - 저도 아들, 딸 하나씩 키우는데 낮엔 학교, 저녁엔 학원 아니면 컴퓨터 앞. 아이들 생활이 딱 그거 말곤 없어요. 그렇게 보면 가끔 마음이 짠해지죠. 어릴 때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소중한 추억 같은 게 많이 줄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수인 - 학교 환경도 엄청나게 바뀌었죠. 지금은 초등학교 가면 한 반에 스물 몇 명씩 있지만 우리 때엔 60명도 넘었죠.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학교가고요. 지금은 겉으로만 보면 공부하기 참 좋아졌지요.

조명철 - 30년 동안 급격히 발전하고 변해온 사회구조와 분위기가 학교현장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봐요. 시설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패턴이 확 바뀐 거죠.

김재호 - 딱지치기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옛날엔 그랬잖아요. 공책 맨 앞장이 두꺼우니까 몰래 찢어서 딱지 만들고 달력 같은 것도 쓰고요. 근데 초등학교 3학년 다니는 아들한테 딱지 만드는 걸 가르쳐주니까 아들이 이래요. "아빠, 문방구가서 사면 되지, 왜 힘들게 딱지를 만들어?" 사고방식이 바뀌었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엄희숙 - 뭔가를 얻으려면 힘들게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의식이 옛날보다 많이 약해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어렸을 땐 운동회에서 박 터뜨리기한다고 콩주머니도 직접 만들었잖아요. 바느질 해가면서. 요즘 아이들에겐 확실히 그런 경험이 없어졌죠.

사회 - 저도 그랬습니다만 밖에서 놀다보면 어머니가 "밥 먹어라"라고 했던 기억, 다들 있지 않으신가요.
엄희숙 - 당연히 있죠. 그 때에만 해도 친구들끼리 학교숙제 끝나면 미리 약속 안해도 오후에 동네 골목에서 다 만나요. 그게 일상이었죠.

조명철 - 그 땐 텔레비전 채널도 2~3개 뿐이었고 뭐 놀 만한 꺼리가 있었나요. 나가서 해 질 때까지 노는 거에요.

김재호 - 지금은 밖에서 노는 애들한테 어머니들이 밥 먹으라고 소리치는 걸 거의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아파트가 일반화된 탓인 듯해요.
옛날엔 다 골목골목에 살았으니까 엄마가 부르면 다 들렸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고층 아파트 사니까 이게 힘든 거에요. 아파트 20층에서 불러봐야 안 들려요. 물론 요샌 애들한테 휴대폰이 다 있으니 그럴 필요도 없지만요.
80년대보다 생활형편은 크게 좋아졌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면이 사라졌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사교육의 굴레, 끝없이 달려야 하는 아이들

사회 - 사회변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사교육 문제로 주제를 옮겨가 보겠습니다. 옛날에도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말은 많았지만 초등학생 때엔 그래도 덜했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어릴 때부터 공부에 치이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수인 - 80년대엔 사교육이란 말 자체가 생소했죠. 사교육이라 해봐야 초등학생 때엔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 그런 데에 다니는 게 전부였어요.
아무래도 어렸을 때에는 예체능활동이 바른 성품을 만드는데 꼭 필요해요. 물론 요즘은 워낙 너도나도 조기영어니 뭐니해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시키지만 원칙적인 얘길 하자면 그렇죠.

김재호 - 부모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아이 키우기가 갈수록 힘들어져요.
얼마 전에 큰 딸이랑 막내 아들 학원비를 계산해봤더니 한 달에 100만원이 넘더라고요. 지난해하고 올해가 또 달라요. 안 할 수 없으니까 시키긴 하는데…

엄희숙 - 요새 자기주도 학습이 유행어처럼 됐는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까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에요.
가정형편이 힘들어 학원·과외는 꿈도 못꾸는 2학년 학생이 있는데 이 친구가 수능 모의고사만 봤다하면 1등급이에요. 그 학생 공부하는 거 보면 혼자서 끙끙거리면서도 결국엔 그 어려운 수학문제를 스스로 다 풀어요.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다' 이런 생각 많이 하죠.

조명철 -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절대 다수라는 게 우리 교육의 큰 숙제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학교보다 학원에 갔을 때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더 받는 게 엄연한 현실이에요. 공부와 성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학원이 더 낫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굳어져버린 거죠. 학원가면 콕 집어서 가르쳐주니까.

김재호 - 재미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어요. 학원가면 학교보다 재미있게 가르치거든요. 공교육이 더 긴장하고 반성할 부분이 분명히 있긴 있어요.

엄희숙 - 맞는 말이에요. 학교가 더 바뀌어야 해요. 하지만 사교육의 뿌리가 이미 너무 깊게 내려져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봐요.
학생들에겐 학원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세계에요. 거기 안가면 친구도 못 사귀죠. 부모 입장에서도 사교육은 필요악 같은 거에요. 다들 맞벌이를 하니까 애들을 어디 맡길 데가 없는 거에요. 학원보내고 과외시키는 이유가 성적 말고도 여러 가지인 겁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사회 - 결국 대학입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여전히 우리교육의 목표처럼 굳어진 게 문제인데요. 올해로 인천에서 교육행정이 시작된지도 30년입니다.
인천 같은 지역 차원에서 분명 교육의 대안들이 제시돼야 할 텐데요. 궁극적인 방향은 아이들의 행복인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김재호 - 좀 큰 주제인데 사회적으로 아이들에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불과 20년 전만 해도 교실 앞문으로 학생들이 못 다녔어요.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지만 그런 게 선생님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이거든요.
권위의식과 윗사람에 대한 존중은 엄연히 다른 겁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이지만 남을 배려하고 자기의 책임이 뭔지 아이들이 깊이 생각하는 경험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수인 - 저는 '정'이 키워드인 듯 합니다. 30년 전과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가 너무 삭막해졌어요. 그게 학교현장에 고스란히 반영됐어요. 옛날엔 '집이 몇 평이냐', '임대아파트에 사느냐 아니냐'에 따라 아이들 구분짓고 그런 일 없었거든요.
그 때보다 지금 우리생활이 훨씬 풍족해졌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에게 정작 인간적이고 소중한 추억과 정, 이런 게 많이 사라졌어요. 그걸 되살리는 게 우리교육의 큰 방향이라고 봅니다.

엄희숙 - 학교교사들의 격무를 줄이는 작업도 시급해요. 사교육 줄이고 공교육 되살리려면 결국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더 에너지를 쏟아야 하거든요.
학생 입장에선 수업시간에 운동이나 음악 같은 예체능과목을 더 많이 넣어야 합니다. 입시, 입시 하지만 사실 10시간 내리 공부하는 것보다 1시간 잘 놀고 9시간 하는 게 훨씬 낫거든요.

조명철 - 학원가서 미리 배우는 것과 혼자 예습해보는 건 분명 다르거든요. 학교가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학부모들도 애써야 해요. 먹고 살기 바쁘니까 애들을 학원에 맡겨놓는 식이 많은데 이게 고착되면 될수록 답이 안나와요. 애들이 혼자 뭘 해내는 걸 영영 못하게 되는거죠. 자기주도 학습이랄까요. 그런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 교육만큼 복잡하고 대안을 내기 힘든 분야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한 다양한 대화를 통해 우리 교육이 어떻게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노승환기자 berita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