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天敢比楊妃色/太白詩稱白雪香/別有風流微妙處/淡煙疏月夜中央』

 『백낙천은 배꽃을 양귀비에 견주었고/이태백은 그의 시에서 백설향이라 일렀다/풍류객은 제멋대로 미묘한 곳을 읊었으니/밤중의 달빛아래 자욱한 꽃 보았음이라』

 조선조 중기의 여류시인 이옥봉의 한시 『詠梨花』이다. 시중에서 노래하고 있듯 배꽃은 밤중 달빛 아래에서 완상해야 하는가 보다. 고려의 시인 이조년도 깊은 밤 달빛을 받아 한결 고고한 배꽃을 읊고 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하긴 따지고 보면 이조년의 시조와 같은 명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에서 국어시간에나 옛시조로 다룰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감상을 해도 넉넉할 시구이다.

 장미과의 배꽃은 다른 꽃들이 모두 지고난 양력 5월 초 잎과 더불어 흰꽃이 백설처럼 모여서 피어난다. 꽃을 즐기기로는 붉고 요염한 도화 따위를 꼽을 수 있다고 하나 그러나 오히려 고결하여 자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배꽃 쪽이 더 깊이가 있다. 붉고 아름다운 향기를 자랑함도 아니요 깊은 사념에 잠긴듯 그윽한 기품이 절로 배어 나온다. 옛 가인들이 그것을 즐길만도 했겠다. 그런가하면 배꽃은 무언가 깊은 시름에 찬 소복 차림의 아낙 같기도 하다. 그러니 교교한 달빛 아래의 이화라면 사뭇 두려움조차 느낄 수 있으리라.

 이같은 배나무밭이 예전 인천 근교에 많았다. 지금의 제물포역전-그러니까 남구청 사거리에서 숭의초등학교에 이르는 양켠이 온통 배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단지가 되고 멀리 도림 수산동 쪽으로 물러나있다. 휴일 같은 때에 그곳 호젓한 과수원길을 걷노라면 하얀 눈가루가 흩뿌려진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곳에서 가을이면 도로변에 좌판을 펴고 배를 파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이 배꽃 개화기인 15일부터 안성 평택등지에 인공수분용 꽃가루은행을 설치 운영키로 했다고 한다. 우량종의 집중재배 및 기상악화로 인한 수정의 어려움에 대비해서이다. 동물로 치면 정자은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