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호 과장은 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서 잠시 말을 끊었다. 그때 화장실에서 쏴 하고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누군가가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린 것 같았다. 곽병호 과장은 그때서야 안심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 지도부에서는 노간부들을 당내 요직에 그대로 앉혀두면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눈치를 보며 양다리를 걸치기 때문에 수령님의 권력이 지도자 동지한테 완전하게 이양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네다. 기래서 수령님과 조국을 위해 아직도 한참 더 일할 수 있는 형님 세대까지 잘라서 내보내는 것입네다. 반발과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지도자 동지의 친정체제 구축도 좋다만 평생을 수령님과 조국을 위해 헌신해 온 당 간부들을 썩은 고목 처치하듯 길케 무참하게 숙청해 심심 산촌으로 내쫓으면 누가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하갔는가? 나야 내 자식이 조국을 배반하고 반역자의 길을 걸어갔으니까 자식을 대신해 벌을 받는다고 각오하고 순순히 물러가지만….』

 『곳곳에서 원성이 자자하고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는 것을 당 지도부에서도 잘 알고 있습네다. 길치만 수령님의 권력을 지도자 동지한테 완전하게 이양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강제적으로 밀어 붙이는 방법 외엔 다른 방책이 없다는 것입네다. 기러니까 형님은 지금 광풍처럼 몰아치는 중앙당 지도부의 간부재조절사업 취지를 잘 료해하시고 신풍서군으로 들어가시더라도 매사 신중하시고 발언에 조심하십시오. 공화국 건국 이후 처음 실시되는 권력이양시기에 잘못 걸려들면 짐승보다 못한 참변을 당하게 됩네다.』

 『알았다. 기런 염려는 말고 건너가서 너도 눈을 좀 붙여라. 나는 내일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만나 뵙고 바로 낙원군으로 들어가야갔다.』

 『기러면 병숙이 누님과 병순이 누님이 몹시 섭섭해 할 것인데요? 길케 연락도 없이 훌쩍 떠나가버렸느냐고 저를 나무라면서요.』

 『내가 지금 유람 다니는 사람이 아니니까 섭섭하게 생각해도 도리 없다. 네가 중간에서 말이라도 잘 좀 전해주려무나….』

 『형님 립장도 리해는 합니다만 웬만하시면 하루 정도 더 시간을 내서 혁명렬사릉에도 다녀오시고 잠시라도 누님들의 얼굴을 보고 가시지요. 이번에 만나보지 않으면 형님이 언제 다시 누님들을 만나볼 수 있갔습네까?』

 곽병룡 상좌는 동생의 그 말에 그만 약해졌다. 경황없이 바삐 돌아다니다 보니 곽병호 과장이 지적한 대로 대성산 혁명렬사릉에 안장된 부친의 산소를 찾아보지 못한 것이다. 정말,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녔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허황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요새 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평양에 올 때는 분명히 아버지 산소에도 들려야겠다고 계획은 했는데 그걸 까먹다니….』

 곽병룡 상좌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