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3년만에 재점화 … 실현 가능한가
   
▲ 한나라당의'반값'등록금 대책에 인천 주요대학과 학생들은 아직'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나, 어떻게 등록금을 줄일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7일 인천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걸어가고 있다.


'반값' 등록금이 3년 여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에 대한 서민들의 원성에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최근 등록금 인하대책을 공언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대학 등록금이 비싼 나라다. 대학생·학부모라면 등록금 인하대책에 귀를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 공언은 '반신반의'의 대상이기도 하다. 서민들은 2007년 말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음에도 이듬해 새 정부 출범 직후 이 정책이 흐지부지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2006년 총선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이른바 '반값' 아파트 정책도 사실상 무산됐다. 반값 아파트 실현을 위한 보금자리주택 분양가는 수도권에서 주변 시세의 75~80%선으로 책정돼 왔다. 대학 등록금이 실제로 반값이 되려면 정치적 공언에 앞서 실현 가능한 계획부터 내놔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아직은 믿을 수 없다"

"학생들 분위기가 벌써부터 술렁술렁해요. 반값 등록금 추진된다니까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다 똑같이 등록금 절반을 덜 낼 것으로 기대하는 겁니다. 한나라당 발표내용 보면 그렇지 않은데요. 등록금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인데 정치권이 발표부터 덜컥 한 게 아닌가 합니다."
지난 26일 인하대학교 재정담당 직원이 전한 얘기다. 그는 "대학들 보고 '나라에서 자금을 댈테니 등록금을 내리라'는 것일텐데 지난 경험에 비춰볼 때 그게 어디까지 실현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인하대에서 만난 3학년 김정호(25·가명)씨는 "등록금 내린다는데 당연히 대환영이죠. 문제는 재원인데 최근 언론에 나오는 기사보면 반값 등록금이 실제 가능할 것 같지 않던데요"라고 했다.
대학 현장에서 반값 등록금을 어떻게 보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립 인천대학교에서도 반값 등록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마찬가지다.
지난 27일 한 관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치솟는 등록금을 잡겠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된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 대학생과 서민들에게 이번 발표가 그리 와닿지 않는 것 같다. 등록금 내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가가 책임지거나 사립대 같으면 재단이 전폭적으로 대학에 투자하면 된다. 오래 전부터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문제는 실천이다."


▲ 반값 등록금, 추진력 있나

현장의 우려대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정부는 이른바 반값 등록금을 두고 안팎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황 원내대표의 반값 등록금 공언 요지는 소득수준 하위 50% 학생들에게(대상) 등록금의 최소 절반을(범위) 국가재정으로 지원한다는 것(방법)이다.
필요한 국가재정은 6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재원은 매해 정부 일반회계 예산집행 잔액(세계잉여금) 6조여원이다.
기획재정부는 조심스레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예산집행 잔액의 쓰임새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정부 안에선 교육과학기술부만이 등록금 인하의 원칙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지난 25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황 원내대표와 등록금 인하대책에 합의했다.
한나라당 내 의견은 '내분' 수준이다. 중진의원들 사이에서 반값 등록금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같은 당 안에서조차 등록금 인하대책의 추진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 섣부른 발표보다 내실 아쉬워

인천의 4년제 종합대학과 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인천대에선 내년 3월로 예정된 국가법인 전환을 앞두고 국고보조가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미 3년 전 인천시가 국가법인 전환 후 4천600억여원을 지원하기로 한 반면 국고보조는 그 규모나 시기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시 지원금보다 국고보조가 더 적을 것이라는 예상이 이미 기정사실처럼 얘기되고 있다.
전국 주요사립대 평균(2010년 기준)의 70% 정도인 등록금이 얼마나 떨어질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시립인 인천대의 올해 등록금(평균) 1년치는 509만6천원이다. 한 해 700만~800만원에 이르는 국내 사립대 등록금보다 비교적 낮다.
인천대 관계자는 "나라의 재정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사립대에만 등록금 인하혜택이 돌아가고 국·공립대가 제외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반값 등록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학생들이 느낄 실망은 몇 배가 된다. 구체적인 방안제시가 없으니 혼란만 가중된다"고 했다.
인하대에선 사립대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적립금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하대가 당장 쓸 일이 없는데도 해마다 모아놓는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1천342억원이다. 그 해 다 못 쓴 예산을 이듬해 세입으로 잡는 공립대와 달리 사립대에선 해마다 남는 예산이 이월적립금이란 이름으로 따로 쌓인다.
지난해 인하대를 졸업한 직장인 유모(26)씨는 "적립금은 그야말로 대학이 자기 뜻대로 학생들에게 걷는 돈이다. 오래 전부터 정부가 적립금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등록금은 계속 올라왔다. 이런 문제부터 정부가 하나씩 풀어줘야 학생들이 정책의 혜택을 느끼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 구체적 추진 계획 하루빨리 세워야

대학 재정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 인하대가 64%, 인천대가 55.4%다. 인하대의 경우 전국 사립대 평균 수준이고 인천대는 다른 지역 국·공립대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어찌됐든 살림의 절반 이상을 학생들의 등록금에 기대 꾸리고 있는 상황이다.
등록금이 비교적 싼 인문·사회계열만 놓고 봐도 인하대의 1년 등록금은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200만원, 인천대 1년 등록금은 100만원씩 올랐다. 각각 1년 금액이 670만8천원, 452만원이다. 올해 인하대는 정부의 동결유도에도 지난해보다 3.9% 등록금을 올렸다.
정부의 등록금 인하정책에 발맞춰 대학들도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하대의 다른 관계자는 "결국 세부 추진계획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한나라당이 발표한 안을 보면 소득수준 하위 50%가 반값 등록금 대상인데 이미 지금도 기초생활수급가정 학생에겐 나라가 한 해 450만원을, 차상위계층 학생에겐 그 3분의 2 수준을 장학금 조로 준다. 대학도 나름대로 노력해야 하겠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확실한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노승환기자 berita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