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백의종군=제장명

지난 4월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로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한 우리나라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벼슬도 없이 전장에 임한 '백의종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당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7년 전쟁의 영웅이면서도 역적으로 몰려 죽음 직전까지 갔다 왔고, 그의 아들은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백의종군 기간 어머니가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조선을 지켰지만 돌아온 것은 백의종군이었다. 책 '이순신 백의종군'(행복한 나무·308쪽)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순신의 백의종군과 1597~1598년 이순신과 관련한 기록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순신은 1597년 4월 1일 출옥한다. 그가 출옥한 날 친척인 생원 윤간의 집에서 이틀간 묵는다. 이때 그를 찾아온 인물들은 아들 울과 조카 봉과 분, 윤사행과 원경이 있었다.

이순신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던 동명이인 이순신도 있었다. 당시 경기도 유도방호대장직을 수행하고 있던 동명이인 이순신은 술을 가져와서 이순신을 위로한다.

초계 도원수진에 도착한 이순신의 59일간 활동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도원수의 군사업무 관련 자문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둔전경영, 마지막으론 칠천량해전 패전 후 수군상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이순신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요지의 훈시를 한다. 이는 절대 열세한 세력이지만 명량이라는 천험의 요새지를 지킴으로써 아군 측에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 행동이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침략국 일본에 대한 복수적 의미도 부여됐다. 수군의 군공평가에 인색했던 선조는 노량해전의 의미에 대해 "해상에서의 승리는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이는 조금 위안이 되고 분도 풀린다"고 말했다.

이순신은 1597년 2월 26일 한산도에서 체포돼 3월 4일 한성에 투옥된 뒤 27일 간의 옥살이를 산다. 41일 만에 풀려난 이순신은 이후 초계(합천 율곡)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을 한다. 이 책은 4월 1일부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는 등 8월 3일까지 120일 간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정리, 재구성하고 있다.

책은 또 조선의 운명을 바꾼 12시간의 명량해전 전투과정을 담고 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13척의 전선으로 300여 척의 일본군 전선을 파괴한다. 이순신은 이 과정에서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 강화하는 대대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조선 수군 재건과 강화과정도 만날 수 있다. 1만5천 원.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