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 조직부 간부과장으로 영전해 갈 수 있게끔 뒤를 받쳐준 친형을 어떻게 그런 산간오지에 처박느냐고 말이다. 그렇지만 멸문지화의 위기에 놓인 가정을 살리고 선친의 위업과 전체 가문의 권세를 그나마도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길은 그런 궁여지책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광병룡 상좌는 다시 동생을 설득시켰다.

 『병호야, 형이 너한테 못할 짓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길치만 네가 이 형을 위해 한번 욕을 얻어먹는다고 생각하고 용단을 내려 달라는 말이다. 너도 잘 알고 있갔지만 도마뱀은 제 생명이 위기에 처하면 꼬리를 끊어주고 달아나면서 우선 목숨만은 건진다. 그런 연후에 잘려나간 꼬리는 살아가면서 차차 복원시킨다. 인구란 놈이 너와 나의 립장을 꼭 위기에 몰린 파충류의 신세로 만들어 놓았다. 기러니 네가 도마뱀의 생명보존법을 교훈으로 삼아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라. 기거이 연로한 오마니와 네 가정을 살리는 길이고 이 형도 살려주는 길이다….』

 곽병룡 상좌는 고개를 떨어드리고 그만 흐느끼기 시작했다. 곽병호 과장은 형의 손을 잡으며 덩달아 흐느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고 욕을 얻어먹더라도 길케 하갔습네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고 좀 주무시라요.』

 곽병호 과장은 형이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며 녹음기를 치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재의 이 시점에서는 형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형님네 가족도 살고 자기네 가족도 건사할 수 있는 길이었다. 형님은 달포 전부터 자기 형제들이 서로 원수진 사람들처럼 남남으로 갈라서야만 멸문지화를 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그는 차마 자기 손으로 형님을 쳐서 산간오지로 추방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까지 시간을 끌어왔는데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형님의 제안에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이 중앙당 조직부 간부과장으로 계속 근무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형님네 가족을 배신자 가족이라고 몰아 붙여 자기 손으로 산간 벽지로 추방시킨 뒤, 그 곳에서 한동안 묻혀 살도록 하는 형벌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다 당 정비사업과 간부조절사업이 끝나면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의 힘을 빌려 형님네 가족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와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형님네 가족을 사지에서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늙은 어머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떨어져 있는 기간이 한두 해도 아닌데 어머니를 형님과 함께 산간벽지로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천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돌아가실 것이다. 도리없이 어머니는 옛날처럼 자신이 모셔야 될 것 같은데 어머니가 다시 평양으로 오실 지는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자유의사에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큰 누님과 둘째 누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