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상처를 가득안고 있는 연평도. 악몽같았던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따스한 봄기운이 온 섬을 감싼다. 을씨년스럽던 마을에 주민들이 돌아와 포근하고 행복한 지난날 연평도의 일상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벌써 4월, '꽃게 철'이 아닌가. 연평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꽃게다. 연평도의 가장 큰 소득원이자 직업인 꽃게잡이 출어를 준비하는 주민들은 요즘 더없이 분주하고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보다 조금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연평도 선장(어민)협회 회장 김종희(53)씨. 그가 전하는 '꽃게잡이 인생'과 연평도의 오늘에 만선을 꿈꾸는 어부의 행복과 기대가 잔뜩 서려 있다.
 

   
▲ 지난 9일 새벽 6시 김종희씨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배와 기상상태를 둘러보러 부두로 나와 있다. 김 선장이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다. /연평도=조현미기자 ssenmi@itimes.co.kr


누가 봐도 그는 천상 '뱃사람'이다.

김 선장은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향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무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바다로 나갈 수 없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뱃일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고집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마을사람들도 그에겐 혀를 내두른다.

"새벽같이 눈이 떠지고 몸이 저절로 움직여요. 바다로 못나가도 배라도 한 번 둘러보고 해상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껴봐야 직성이 풀려요. 이 생활도 벌써 30년째네… 아휴. 지겨워라."

말로는 지겹다지만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막바지 꽃게잡이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23일. 난데없는 북한의 무력도발로 어업을 중단한 채 허망한 시간을 보냈던 김선장이다.

다시 꽃게잡이를 시작한다는게 내심 좋으면서도 무뚝뚝하게 에둘러 표현한다.

"이제야 배가 고프네. 매일 주민들과 모여 배를 점검하고 어구 손보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지도 몰라요. 제가 요즘 이렇게 삽니다."

밥 한끼 제때 먹지 못한 채 일을 하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늦은 점심에 소주 한잔을 들이켜며 그는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전라도 목포에서 나고 자랐죠. 바다라면 신물나게 봤죠. 어떨 땐 바다가 지겹더니 안보면 그립기도 하더라고요. 자연스레 제가 바닷사람이 될 걸로 생각했는데 꽃게를 잡게 될 줄은… 게다가 인천까지 올 줄은 몰랐죠."

꿈 많고 희망찬 19살. 그는 목포와 제주를 오가는 전기화물선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순하지만 그는 그때부터 '큰 배'를 운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마을 어른들 고기잡이에 따라 나섰다 '신세계'를 발견했다.

"조타실에서 배를 몰기만 하다가 선체에서 일손을 도우며 고기를 잡다보니 왜 이렇게 재밌던지,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날로 그의 꿈은 하루아침에 뒤바꿨다. 같은 뱃사람이지만 '어부'가 되기로 전향한 것이다.

배운전은 기본, 고기잡이까지 배우려 그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20년전 소연평도로 향했다. 그는 섬에 온 지 1년만에 꽃게잡이까지 단숨에 익혔다. 정말 바닷사람이 될 '재목'이었는지 그는 순식간에 꽃게잡이에 필요한 깜냥을 모두 갖췄다.

"솔직히 꽃게잡이가 더 신나더라고요. 잡는 재미, 먹는 재미에 돈 버는 재미까지 아주 쏠쏠하더라고요."

그 뒤 그는 지금의 연평도에 둥지를 틀었다. 그간 일하며 모은 돈으로 그는 곧바로 꽃게잡이 배를 샀다. 바로 '선장'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오랜 꿈은 모두 이뤄졌다. '큰 배'를 몰고 거기에 각종 고기와 꽃게까지 잡는 사람이 됐으니 말이다.
 

   
▲ 지난 9일 오후 어구 작업장에 나온 김종희씨가 어구를 걸어 바다에 던지는 닻을 손보던 중 고장난 부위를 고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매일이 꿈같았죠.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 날 전까진… 아무리 꽃게가 조금 나도 그때만큼 암담하진 않았으니까요."

연평도 포격 얘기다. 김선장은 곧바로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온 몸으로 진저리쳤다.

"유독 지난해에는 꽃게가 많이 났어요. 여름엔 물폭탄이 내려 걱정이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게는 많이 잡혀서 신명났었죠. 그런데 뜬금없이 섬으로 진짜 폭탄이 떨어지다니… 다신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꽃게 수확에 여념없던 말미에 그런 일이 터져 어구도 거둬들일 겨를없이 그는 섬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 뒤 그는 실의에 빠졌다. 섬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고 했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바다에 쏟은 터라 오히려 뭍에 있으니 멀미가 나던데요. 정말 일하고 싶었고 섬으로 돌아오고 싶었죠. 할 일이 태산인 데 밖에서 손 놓고 마냥 있었으니 답답했죠."

그는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되자 곧바로 섬으로 향했다. 바다엔 나갈 수 없었지만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며 꽃게잡이 준비에 몰두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이 더 빨리 떠져요. 바다와 배를 둘러보고 거둬들인 어구를 고치며 지내는 지금이 아주 흐뭇하고 좋습니다."

김씨는 꽃게잡이에 나서기 전 해야 할 '하이라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풍어제'다.

뱃사람들의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건데 그는 연평도 선장(어민)협회 회장으로 8년째 풍어제를 도맡아 진행했다.

"풍어제만 지내면 정말 모든 준비는 끝입니다. 오는 13일 꽃게잡이 첫 출항입니다. 많이 떨리고 설레는 만큼 지금까지 이어 온 연평도 '명물'이자 '자랑'인 꽃게를 열심히 잡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새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정해진 가사없이 혼잣말을 하듯 '랩'인지 '민요'인지 알 수 없는 노래를 작은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그는 목포 뱃사람들이 가끔 부른다는 '희망가'라고 했다. 노랫말 속에 연평도의 밝은 내일과 만선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아 불렀다고 했다.

"연평도 주민들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모두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힌 김선장은 "기온이 오르고 게가 많이 나는 5월엔 섬에 놀러오세요. 30년 경력 베테랑 기관사인 제가 배도 태워드리고 꽃게잡이도 보여드릴게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연평도=조현미기자 ssenmi@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