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자 어케 살아야 좋갔나, 병호야?』

 곽병호 과장은 무슨 대안이 서지 않는 듯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는 것이다. 남조선 특무들의 강권에 못 이겨 조카가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녹음된 조카의 기자회견 내용을 듣고 보니 인구가 북에 남아 있는 혈육들의 앞날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철없이 덤벙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구의 기자회견 내용을 듣지 않은 것이 차라리 마음은 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가 낙원군 사회안전부장으로 있고, 제 작은아버지가 중앙당 조직부 간부과장으로 있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인구가 어떻게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 생각은 않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그런 식으로 험악하게 비방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은 자기 한 몸 살자고 북에 남은 전가족을 몰살시키는 처사와 같았다. 남으로 넘어가더라도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비방만큼은 하지 말아야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를 찾아가 혈육이 참변을 당하는 일만큼은 막아 달라고 사정이라도 해볼 텐데 이제는 만사가 어그러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남조선 특무들의 협박과 공갈에 못 이겨 인구도 죽지 못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아도 『악마 같은 김일성·김정일 도당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고 하루 빨리 그들의 파쇼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 달라』는 조카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 꽂히는 것이다.

 그 말은 인구가 완전히 정신이 돌아버린 것 같은 느낌을 안겨 주었다. 그들 형제는 이제 입이 열 개가 있어도 어데 가서 도와 달라고 매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그렇게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로 욕한 배신자 가족을 어느 누가 자기 죽을 줄 모르고 도와 줄 것인가 말이다.

 『이자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내가 부탁한 대로 신풍서군으로 내려보내 다오. 기게 너도 살고 궁극적으로는 나를 살려주는 길이다….』

 곽병룡 상좌는 또다시 담배를 빼물며 아우를 바라봤다. 곽병호 과장은 꺼질 듯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기게 형제지간에 있을 수가 있는 일입네까? 전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무서워서도 형님을 그곳으로는 못 보냅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내가 내일 찾아가서 전후 사정을 말씀드릴 테니까 내 말을 들어라. 더 이상 다른 대안은 없다.』

 곽병룡 상좌는 동생을 달래듯 거듭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정세판단과 업무장악력이 뛰어나 지도자 동지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동생이 당을 대신해 자신을 치고, 자신은 당의 명령지시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형식으로 신풍서군 목재가구공장 안전주재원으로 강등되어 내려가면 주변에서는 동생을 향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동물이라고 대놓고 욕을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