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치 못한'파산신청'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어머니의 가출, 중학교 중퇴,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한 남자를 위한 거액의 빚보증, 그 남자의 행방불명, 하나 뿐인 아들의 간질 발작 … ".

수기로 빼곡히 쓰여진 진술서 내용은 마치 소설 같았지만 그 뒤에 첨부된 각종 자료들은 위 내용이 소설 같은 실화일 따름임을 말해 주었다.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에게 어떻게 이런 궂은 일들만 연달아 생길 수 있을까, 산더미처럼 쌓인 파산 신청서들을 옆에 두고서 파산담당 판사인 필자는 잠시 운명, 인생 이런 단어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는 이런 여성에게 1억원에 달하는 채무를 해결하고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이 로또 당첨 말고 과연 존재할까 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면 파산제도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필자가 파산제도의 필요성을 매 사건마다 느끼는 것은 아니다. 파산이나 면책사건 중에서 사실관계 확인이나 법률 검토가 필요한 사건들은 재판장이 채무자와 채권자들을 같이 소환해서 따로 심문을 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간혹 황당하기까지 한 경우를 보기도 한다.

채무자가 스스로 자기 명의 집이 있다면서 급하게 쓸 데가 있으니 며칠만 돈을 변통해 달라고 해 어렵게 수천만 원을 마련해 빌려 준 채권자가 결국 파산신청에 이른 채무자의 행위가 너무 의심스러워 심문실에서 재산은닉의 가능성을 제기하자 도리어 얼굴을 붉히며 은닉했다는 증거가 있냐고 필자 면전에서 핏대를 세우는 채무자들이 있다. 아니 채권자 입장에서는 채무자가 파산신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날벼락을 맞은 셈인데 원금조차 거의 못 갚은 채무자가 그런 채권자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다니! 그런 광경을 보면서 필자는 과연 이런 자들이 파산제도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위와 같이 매우 대비되는 사안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필자는 매일 파산신청 서류들과 씨름을 하면서 수도 없이 '아, 정말 하루 빨리 면책 시켜줘야 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고 '이 자는 도대체 어떻게 빚을 지고 또 처신을 했길래 채권자들이 이토록 원통해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고는 면책을 불허가할 사유들이 없는지 유난히 꼼꼼히 기록을 보게 된다.

어쩌면 채권자들이 그토록 원통해 하는 것은 채무자가 정말로 지급불능 상태에 있지 않다는 믿음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채권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미안함과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무조건 법대로 하라는 상식과 윤리에 어긋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파산제도가 사회 전체의 통합기능에 저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겸손치 못한' 채무자들에게는 파산제도의 혜택을 부여하는데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할 때 파산제도의 효용성과 진가가 더욱 발휘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