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국 46용사유족협의회 자문위원
   
▲ 천안함 사태는 평범한 이정국 씨를 뉴스메이커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태 발생 1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무기력한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몰려있을 정도로 아픈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3월26일, 인천 서해 최북단 백령도 앞 바다에서 천안함이 가라앉았다. 고 최정환 중사의 매형인 이정국(40) 씨에겐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다. 천안함 사태로 평범한 컴퓨터 강사였던 이씨의 삶은 확 바뀌었다. 이씨는 당시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아 장병 가족들의 '입'이 돼줬고 온 국민이 이씨의 입을 통해 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천안함 사태 발생 1년이 된 시점,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씨는 여전히 천안함의 그늘을 벗지못하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정환이를 고등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다. 그래서 정환이는 내게 친동생이나 마찬가지다. 1년 동안은 동생의 부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정환이는 군 생활을 하면서도 내게 꼬박꼬박 안부 전화를 하는 동생이었다.
그런 걸 다시 떠올리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도 정환이를 잊지 못해 동생의 옷을 입고 다닌다.
정환이가 없으므로 가장 즐거웠던 날들이 힘들고 슬픈 날이 돼 버렸다. 추석 같은 명절 날 가족들이 모여 누군가 동생을 떠올리게 되면 모두 눈물을 흘린다.
천안함 사태가 조용해졌어도 또 한번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고 더 이상 정환이 같은 장병들이 죽지 않도록 국방부 등 여러 기관을 찾아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생계가 어려워졌다. 곧 있으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 천안함 침몰사건 1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천안함 47용사 추모분향소에서 추모글이 적힌 리본 너머로 시민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뉴시스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을 유창하게 해 언론사 출신이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자유롭게 얘기했다. 절박한 상황이라 더 그렇게 호소하지 않았나 싶다.
그 순간엔 절박했다. 내 동생의 생존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시신을 건져야 했으니깐.
항간엔 내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던지 결탁에 의해서 지시를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국정원 출신, 언론사 출신 등 별 소리가 다 들렸다.
더구나 내게 정환이는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였고 내 아픈 마음은 직계가족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는데 내가 직계도 아닌데 왜 나서냐는 말도 들렸다.
어쨌든 천안함 사태로 직장도 그만두고 거기에만 매달렸다. 언론에 노출되고 나니 나중에 본업으로 돌아가려 해도 거래처에서 부담스러워해 일을 다시 시작 못했다.
언론 노출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않더라.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버지가 이북 사람이라 북한에 친누나가 있다. 아버지가 남하를 한 것인데 통일을 기다리다 대를 잇기 위해 낳은 자식이 나다. 그래서 북한은 나에게 '형제의 나라'면서 '원수의 나라'다.
북한에 경고를 하고 싶다.
천안함 사건 등 북한 관련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인터넷 등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면서 때론 혼란과 대립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모습이 마치 일부 한국인들이 북한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이고 한국이 건강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북한이 착각을 일으켜 또 다시 인면수심 경거망동한다면 그에 따른 응징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안보하고 정치가 나눠져야 한다. 연평도나 천안함 사태처럼 포격 행위 주체자가 발생하면 여야에서 동일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북한을 규탄하고 권고하고 대한민국이 영토를 지켜야겠다는 안보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가 천안함 관련 논란 속에서 명확한 종지부를 못 찍었다. 북한이란 행위 주체는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배경, 반성, 대책 등이 없었다. 언론도 논란만 보도했다.
이후 연평도 사태가 천안함 사태와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여 북한에 대한 안보의식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사용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 했다. 국민들 의식 수준이 강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를 두고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간에 다툼만 있었다. 보수 쪽은 군과 정부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반성을 유도해야 했고, 진보 쪽은 어뢰를 먼저 인정하고 군 정부를 비판해야 했다. 그렇치 않다 보니 천안함 사태가 중간에 떠 결론이 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정리가 없으면 결국 천안함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나면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1년 간 정부와 군은 논란과 의혹을 확실히 정리하지 못 했다.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바다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받아 준다. 바다가 젊은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곳이 되선 안된다.
유족들로 구성된 협의회의 목적은 아픔 사람끼리 보듬고 가는 것이고 우리가 베풀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이다.
지난해 고속정 침몰로 숨진 장병들을 조문했고 연평도 포격 때는 주민들을 찾아가 위로했다.
1년에 두번 정기 모임을 갖는데 특히 총무가 다방면에 걸쳐서 가족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신념을 위해 사는 삶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어떠한 난간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사람과 아이들한테 늘 미안하다. 돈을 벌던 사람이 벌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 다행히 안 사람이 지금까지 경제적 부분에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나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 돈은 다시 일어나 벌면 된다.
하지만 천안함 용사들은 현충원에서부터 시간이 멈췄다. 그들의 명예는 산 사람이 만들어줘야 한다.
대한민국이 조금은 더 그들의 희생을 다각적으로 공부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 천안함과 유사한 사건이 터졌을 때, 정부와 국민들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그들에 대한 희생을 길어주는 것이다.
끝으로 여러 논란을 떠나서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슬퍼해주는 등 관심을 보여준 국민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글·사진=박범준기자 parkbj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