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경기본사 제2사회부장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봄이 오는 소식은 마냥 좋은데, 오늘 내리는 비는 별로 달갑지 않다. 올들어 첫 대규모 황사가 동반된 비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진눈깨비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습니다. 오라는 봄은 오지 않고 춘삼월 호시절에 뜬금없이 겨울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풍경들이 폭설에 매몰되고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 소설가 이외수씨가 몇 시간전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춘삼월의 사전적 의미는 '봄 경치가 한창 무르익는 음력 3월'을 말한다. 하지만 지난 1월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씨는 작품 '미망'에서 "춘삼월 호시절 꽃나무 그늘에라도 앉은 것처럼 종상이의 마음은 한가하고 화려해졌다"라고 표현했다.
여러 봄과 관련된 글과 말 가운데 해마다 3월 중순쯤이면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꽃이 필 무렵에 시샘하는 추위를 보고 사람들은 이 표현을 즐겨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춘래불사춘'은 기원전 1세기쯤 중국대륙을 통치하던 한나라 시절 중국의 북방오랑캐인 흉노족과의 사이에 있었던 고사에서 기인한다.
중국의 역대 4대 미인이라면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를 칭하는데, 이중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당나라 시인 동백규의 시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1세기쯤의 한나라 시절 중국의 북방은 흉노라는 오랑캐가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한나라의 국력이 비록 중국대륙을 통치할 만큼 대단했지만 용맹한 흉노 또한 만만찮은 위세를 떨쳤던 모양이다. 해서 한나라 궁궐에선 흉노를 달래고자 흉노의 왕에게 여자를 보내주는 관례가 생겨났다.
흉노에게 보내는 여자는 궁녀 중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를 보내는 관습이 생겼고, 화공이 그린 궁녀의 그림을 보고 판단했다 한다. 결과적으로 이유야 어찌됐든 궁중화공이 제일 예쁜 왕소군을 제일 추녀로 그렸고 가장 못생긴 그림의 주인공인 왕소군이 흉노에 보내지는 궁녀로 결정됐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황제는 이미 결정된 일을 어찌할 수 없어 왕소군을 흉노에게 보내고 난 뒤 화공을 참형에 처했다 한다.
그녀의 본명은 명확치 않지만 황제가 안타깝고 가련한 마음에 그녀에게 소군(昭君)이란 벼슬 칭호를 내려 그 이후로 왕소군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왕소군의 별명은 낙안(落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악기 타는 솜씨가 하도 뛰어나 흉노로 갈 때 자신의 처지를 악기(거문고·가야금·중국 악기)로 타자 날아가던 기러기떼들이 노랫가락에 빠져 그만 날갯짓하는 것을 잊고 떨어졌다고 해 후세 사람들이 그녀의 애칭을 낙안이라 불렀다고 한다.
후세 당나라의 시인 동백규가 왕소군의 처지를 읊은 시 한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오랑캐 땅엔 봄이 와도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로구나)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자연히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이를 날씬하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네).」
'한 원제를 사모하고 그리워해 병이 돼 야위워졌다'는 춘래불사춘에는 이런 가슴 아프고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다. 이런 배경에서 고향을 떠나는 한과 아픔을 나타내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은 후에 그 의미의 폭을 넓혀 다양한 비유를 할 때 쓰이게 된다. 예를 들어 '중동의 민주화 분위기(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존의 고통에 허덕이는 해당 국가의 민중들의 생활을 나타낼 때', '꽃망울 피어날 봄이 왔음에도 구제역으로 신음하는 축산농의 어려움이나 매몰지의 문제를 짚을 때', '실력을 인정받아 공채사원이 됐는데 전임시장 때 채용됐다 해 그만둬야 하는 한 공복의 처지를 말할 때' 등등, 물론 3월의 꽃샘추위때도 어김없이 쓰는 말이 이 '춘래불사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