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길원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새해설계


지난 25일 연수구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집무실. 바깥 일을 마치고 들어온 안길원(67) 회장이 오자마자 특별회비를 건내러 온 인사와 말을 나눈다. 30분 뒤엔 중구 신생동에 나가봐야 한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서 피난온 독거노인을 찾아가는 일정이다. 짬 내기가 쉽지 않다. 직원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틈에 인터뷰를 '간청'했다. 안 회장을 만나 적십자사 인천지사의 올해 설계를 들어봤다.
 

   
▲ "하루하루 부딪치는 모든 현장이 곧 보람"이라고 말하는 안길원 회장. 그가 말하는 사랑과 봉사, 나눔의 문화 등 적십자사 활동은 대부분이 인천을 사랑하는 애향운동이기도 하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 회장으로 온지 다섯 달째다. 많이 바빠뵈신다. 건축일을 하다 적십자사를 이끌어보니 어떠신지

-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적십자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할 일이 참 많다고 절감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인천에 워낙 큰 일들이 연이어 터지다보니 더 그랬다. 태풍, 폭우 피해복구에 11월에는 연평도 포격사태가 터졌다. 지난 다섯 달이 마치 몇 년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적십자사가 하는 여러가지 일의 사회적 의미와 책임이 크다는 걸 새삼 느낀다. 평생 건축일을 하면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지만 적십자사 일을 맡아보니 책임감이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 새해가 됐는데 요새 어떤 일에 가장 비중을 두고 계신지

- 연평도 지원이다. 포격사태가 터진지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 적십자사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오늘만 해도 오전에 배편으로 구호품 500꾸러미를 보냈다. 무엇보다 연평주민들이 예전의 평화롭던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당장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주신 성금 8억여원을 최대한 빨리 요긴하게 집행하는 일이 숙제다. 맹추위에 난방유도 날라야 하고 하루하루 필요한 생필품도 보내야 한다. 학생들을 위한 용품도 보낼 생각이다. 중장기 사업으로 연평도와 백령·대청도 세 곳에 도서관 건립도 올해 안에 추진할 것이다. 실무선에서 한창 준비되고 있는 일이다. 이래저래 손 가는 일이 많다.


▲ 적십자사가 창설된지 올해로 106년째다. 적십자사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생각은

- 가장 우선하는 건 역시 긴급구호다. 최대한 빨리 현장으로 뛰어나가야 한다. 지난해 가을 계양과 부평 쪽에 수해가 엄청나지 않았나. 그 때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것 보고 느낀 게 많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침수현장에 달려가서 그 무거운 젖은 이불도 걷어내고 쓸고 닦고 치우고 몸을 사리지 않더라.
연평도 사태 때에도 그랬다. 작년 11월 23일에 사태가 터지고 바로 다음 날 새벽, 가장 먼저 행정선을 타고 현장에 달려간 게 적십자사 봉사자들이었다. 시내에서 돌리던 밥차(급식차)도 전부 보냈다. 제일 급한 건 역시 밥 먹는 것 아니겠나.
적십자사가 짊어진 중요한 책임이 바로 그런 거다. 그런 점에서 봉사자도 더 모으고 예산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결국 인력·예산이 중요한데 올해, 그리고 앞으로의 구상은

- 인천지사 한해 살림살이가 현재 37억~38억원 정도다. 많은 회원들이 내주신 회비와 각계각층의 성금이 우리의 주된 재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현장을 다니고 실제 일을 하다보면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속적인 예산 확대를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겠다. 지난해 새로 도입한 '적십자 프렌드십' 프로그램이 한 가지 예다. 기업·기관들과 약정을 맺어 일상적인 회비와 별도로 지속적인 자금후원을 이끌어내는 사업이다. 사업초기 반응이 좋다.
일상적인 회비납부도 확대가 절실하다.
현재 인천지사에 적을 둔 회원은 90만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어린이, 청소년과 노년층을 빼면 회비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회원은 많지 않다. 실제 한 해 동안 회비를 걷어보면 전체 회원의 3분의 1정도만 납부하는 수준이다. 회비납부 인원을 늘려가는 게 관건이다.
자원봉사 인력확대는 장기적인, 그리고 인천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자원봉사에 나선 인원이 50만명, 경기장 도우미로 일한 사람만 5만명이었다고 들었다. 이만큼까지는 아니어도 인천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나서도록 하겠다. 우리 인천도 2014년에 아시안게임을 치르지 않는가. 중장기 계획을 갖고 RCY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부터 노인 봉사자까지 지속적으로 늘려가겠다.


▲ 적십자 회비를 두고 최근 '색깔론' 비슷한 논란이 있다고 들었다. 회비로 북한을 돕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 전혀 그렇지 않다. 적십자 회비는 100% 국내에서만 쓰인다. 물론 여건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장기적으로 북한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적십자사의 근본정신이 인도주의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라고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적십자사가 북한에 가서 펴는 구호활동은 전부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으로 이뤄진다. 아마 북한에 가서 적십자 마크를 달고 일하다보니 일부 시민과 회원들께서 다소간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적십자 회비는 적십자사 활동의 근간이다. 매우 중요하다. 회원들께서 걱정하지 말고 흔쾌히 회비를 내주셨으면 좋겠다.


▲ 적십자사 회장을 맡으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때는

- 하루하루 부딪치는 현장이 전부 보람이다.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지난해 말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했던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였던 것 같다.
자원봉사자 200여명이 늘어서서 하루 종일 배추 2만5천포기를 담갔는데 그 광경은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봉사하는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자랑스럽고 또 너무 고마웠다.
우리가 모토로 삼는 게 사랑과 봉사, 나눔의 문화인데 직접 현장에 나가보면 그런 말들도 다 필요없다. 자기를 내주는 봉사만큼 우리사회에 숭고한 건 더 없는 것 같다.
적십자사의 많은 활동은 인천을 사랑하는 애향운동이기도 하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과 그들을 도우려고 나선 사람들이 만나 일하는 것, 그것이 인천을 아끼고 가꿔가는 가장 가깝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인천지사 회장임기는 3년이다. 올해로 두번째 해를 맞으셨는데 포부나 구상을 듣고 싶다

- 적십자사가 과연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 시민들의 피부에 닿는 활동을 잘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우선 나부터 돌아보고 다짐을 새로이 하게 된다. 적십자사가 하는 여러 구호와 봉사활동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얼마나 훌륭히 해냈는지는 결국 시민들이 평가할 것이다.
짧은 임기이지만 앞으로 적십자사 인천지사의 위상을 국제도시로 나아가는 인천에 걸맞게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다. 위상을 높이는 밑바탕은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남에게 배풀 줄 아는 봉사정신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언론도 가교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오래 전부터 기부가 사회적 문화로 뿌리내린 미국처럼 우리도 경제적 차원 뿐 아니라 베푸는 문화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적십자사가 그 첨병 역할을 맡겠다. /노승환기자 todif77@itimes.co.kr


<안길원 회장은 … >

-1942년 황해도 장연 출생
-인천고등학교,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1985년 ㈜무영종합건축사 사무소 대표이사 역임
-2000년 인하대 총동창회장 역임
-2002년 ㈜무영종합건축사 사무소 회장 취임
-2010년 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