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서 김효민 새해설계


거친 스포츠답게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복싱에 여성들의 활동이 늘어나며 제2의 부흥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여자가 무슨 복싱'이란 편견은 어리석습니다. 남자만큼 강한 파워와 스피드를 자랑하는 그들의 파이팅은 복싱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인천의 간판 여자 복서 김효민(29)을 얼마전 만났습니다.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성산효체육관 사무실에 있던 그는 어느모로 살펴도 갸날픈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링에 오르자 그의 숨이 거칠어 집니다. 눈빛이 고독한 시라소니로 변합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한 차례 지난 후 그가 숨을 몰아쉽니다.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살아났음을 외치듯 거친 숨소리를 냅니다. "링에선 아무 생각 안해요. 본능에 따라 몸이 움직일 뿐이죠." 사각의 링은 그렇게 이성에 앞서 본능을 일깨웁니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 챔피언벨트로 대신하다

WBA(세계권투협회) 페더급 세계챔피언결정전이 열린 지난 2006년 7월 충남 예산중학교 특설 무대. 단발머리를 질끈 동여 맨 김효민이 무대에 올랐다. 프로데뷔 후 김효민의 첫 세계타이틀 도전 상대는 일본의 간판 여성복서 미즈타니 치카였다.
당시 25세의 김효민은 두렵지 않았다. 누구를 상대해도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베이징올림픽에 여자복싱이 제외되며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된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만 남았다.
결과는 김효민의 3대0 판정승. 심판 전원이 그의 우세에 손을 들었다.
경기 후 김효민은 "여자복싱이 베이징올림픽 시범종목에 포함되지 않아 금메달의 꿈을 접었다"며 "이룰 수 없는 금메달을 대신해 챔피언벨트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마추어 여자복싱의 최고 실력자 김효민의 힘찬 프로무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태권 소녀, 복싱 선수가 돼다

김효민은 2002년 한국복싱 사상 첫 여자대회인 제1회 전국여자신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전국체육대회 등 국내선수권을 5연패한 아마추어 여자 간판 복서다.
2003년 11월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57㎏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좌우 어느 쪽이든 상대방을 위협할 수 있는 묵직한 훅이 주무기로 여자복서로는 보기 드물게 KO률이 95%에 가깝다. 아마추어 전적 30전 29승(28KO) 1패. 프로무대에선 5번 싸워 4승 1무를 기록 중이다.
WBA에 이어 IFBA(국제여자복싱협회)페더급 세계타이틀도 지난 2009년 차지하며, 2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의 딸이다.
"처음엔 태권도를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때 복싱으로 종목을 바꿨죠. 어려운 점이 있다면 복싱 시합이 워낙 없다는 거예요."
태권도와 복싱은 스텝이 비슷하다. 그래서 선수층이 두터운 태권도를 피해 비교적 쉽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복싱으로 많은 선수들이 전환한다.
김효민의 경우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종목을 바꾼 것에 후회는 없다"며 "오히려 복싱 선수 생명이 태권도에 비해 길어 종목 전환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링 위에선 아픈줄 모르겠다는'인천의 간판 여자 복서'김효민이 오는 3월12일 경남 진주에서 열리는 WBA세계타이틀매치 1차 방어전을 앞두고 맹훈련을 하고 있다./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잽이 승부를 좌우한다

166㎝에 57㎏, 복서로서 다소 큰 키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긴 팔을 이용해 오히려 그의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두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올려치는 훅은 국내 여자 복서 중 최고의 기량이다. 또 상대의 접근을 견제하는 스트레이트 잽도 수준급이다.
"링에선 아픈 줄 몰라요. 정신이 멍할 땐 있어요."
일단 링에 오르면 내 안의 고통은 사라진다. 눈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도 조금 쓰릴 뿐이다. 상대 주먹의 파괴력은 거의 느끼지 못 한다. 오로지 시합에 집중할 뿐이다.
그는 "1회전 첫 펀치를 주고 받으면 승패 여부가 결정난다"고 했다. 첫 펀치에 상대에 대한 전력이 파악된다는 의미다.
"1회전에 오르는 순간 '이번 경기는 몇 회전이면 끝나겠다'고 예측이 가능합니다."


▲스물 아홉, 앞으로 10년을 꿈꾸다

김효민은 대전료로 2천만~3천만원을 받는다. 물론 후원 업체로부터 매월 약간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시합을 치러야 안정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엔 스폰서가 없어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당연히 수입도 없었다. 올해는 그나마 다행인게 2차례의 방어전이 계획돼 있다.
오는 3월12일 WBA세계타이틀매치 1차 방어전이 경남 진주에서 열리고, 5월경 일본이나 페루에서 지명방어전을 치를 예정이다.
"지난해 후원이 없어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타이틀 방어전이 줄줄히 계획돼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방어전을 마쳐 선수생명을 이어가야죠."
김효민은 매일 아침 약 8㎞를 뛴다. 이어 오후 줄넘기와 스파링이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된다. 스물아홉 그가 40대까지 선수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여자복싱은 일본과 미국, 캐나다 등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 대부분의 선수들이 30대 중후반입니다. 40대 선수들도 많죠."
남자와 달리 여자는 40대가 되어도 근력과 지구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순발력을 뒤질 수 있지만 복싱은 지구력의 싸움이다. 김효민이 꿈꾸는 향후 10년의 모습이 가능한 이유다.
"힘들죠. 시합 뛰고 나면 정신이 몽롱해요. 그래도 복싱이 좋아요. 나이를 먹으면 노련미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스포츠가 복싱이거든요."
미녀 복서 김효민의 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배인성기자 isb@itimes.co.kr


<김효민 선수는 … >

●1983년 인천 계양구 효성동 출생
●현재 인천 부평구 청천동 거주
●수상경력
-2002년 제1회 전국여자신인선수권대회 우승
-2003년 제2회 아시아선수권대회 57㎏급 은메달
-2006년 WBA(세계권투협회) 페더급 세계타이틀 획득
-2009년 IFBA(국제여자복싱협회) 페더급 세계타이틀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