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경기본사 제2사회부장
   
 


지난해 11월말 경북 안동을 시작으로 전국을 초토화시킨 구제역이 서서히 진정국면에 접어든 반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한숨 돌린 방역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구제역은 예방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발생신고건수가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 경기지역에선 신고가 더이상 접수되지 않고 있다. 반면 AI가 지난해 12월말 전북 익산시 및 충남 천안시에서 발생한 이후 서해안을 타고 수도권지역으로까지 치고 올라왔다.
800여마리의 산란계가 폐사해 지난 14일 의심신고된 이천시 설성면 행죽리 산란계농장의 닭이 고병원성 AI로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인접한 안성지역 3개 농가로 번진데 이어 지난 20일 파주와 22일 양주에서 잇따라 발병하는 등 AI가 경기북부지역으로 확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과 인접한 전국 최대 닭사육지 포천시가 '초비상'이다.
구제역으로 전국에서 소·돼지 200여만마리가 매몰 처분되고 그에 따른 보상 등으로 2조원의 손실발생 등 사상 최대 규모라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피해 외에도 국내 축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등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는 축산업은 물론 다른 분야로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막대한 살처분 보상금과 백신 접종비, 쇠고기 소비량 감소, 국내 대표적 겨울축제인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 포천 동장군축제, 가평 씽씽 겨울축제 등 각종 겨울행사 취소에 따른 관광객 감소 등으로 지역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이 외에도 농촌체험마을, 정육식당가 등은 이용객 급감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축산업 관련 종사자와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직·간접 피해 규모가 너무나 커 그 후유증이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설 대목이 코앞인데 전통민속 5일장 폐쇄로 생계에 지장을 받고 있는 재래시장 노점상과 영세상인들은 정부가 AI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이달 13일부터 27일까지 15일간 재래시장에서 살아 있는 닭과 오리의 판매마저 금지돼 사람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아 시름이 깊어만 간다.
구제역과 AI는 얼마 안가서 다가올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풍속도마저 바꿔 놀 태세다. 인구대이동이 예상되는 설연휴가 다가오면서 국내 축산업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친지들의 귀성과 성묘자제를 요청하는 서한문을 발송하고 설대목을 앞둔 재래시장을 폐쇄하는 등의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다. 구제역 전파원인은 90%이상이 사람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구제역 확산방지를 위해 설귀성객들에게 축산농가 출입자제 등을 당부하는 '구제역 설대책'을 추진한다. 소와 돼지의 모돈·종돈 등에 대한 구제역 백신 예방접종을 끝냈지만 많은 귀성객이 이동하는 설명절에 또다른 구제역 발생이 우려된다고 판단, 설 대책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도는 먼저 도내 시·군 주요 길목에 방역초소를 마련해 예방약을 살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귀성객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와 함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후 가족들이 모이면 축산물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 국산 축산물 소비를 촉진시켜 줄 것도 당부했다. 이를 통해 축산농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간다는 생각이다.
특히 일부 지자체들도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친지와 가족들의 귀성 및 성묘 자제를 촉구하는 기초단체장 명의의 서한문을 발송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자식처럼 돌봐온 가축들이 하루아침에 생매장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하는 축산업종사자들의 마음은 10년만에 찾아온 한파 그 이상의 냉기가 흐르는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모처럼 보고픈 자식들마저 보지못하는 쓸쓸한 설을 맞이할 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