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례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새해설계


 

   
▲ 이귀례 이사장이"차를 배우면 예를 알고 애국을 할 수 있다"며 차를 건네고 있다./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빨간 보자기를 덮은 차상, 찻물을 끓이는 작은 가마솥. 이귀례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이 안내한 다례실습장은 규방다례세트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풍경이다.

"자, 우선 차 한잔 하고 합시다."

이귀례 이사장이 내민 사발엔 짙은 녹색 액체가 담겨 있다.

보통, 차라고 하면 맑고 청아한 액체여야 하는데 그가 준 차는 걸죽해 보인다.

"찻잎을 갈아 만든 것이라서 그래요. 비타민과 영양이 매우 풍부한 차라고 할 수 있지요. 이건 이렇게 양 손으로 바쳐서 먹는 겁니다."

그가 건넨 차는 '갈은잎차'다. 갈은잎차를 다 마시자 이번엔 투명한 연두색이 흐르는 차가 올라온다.

"이건 작설차이죠. 100도씨로 끓인 물을 70에서 80도로 낮춰 우려낸 거예요."

일일이 차에 대한 설명을 하며 그가 연거푸 따라주는 차를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보약 대신 차를 하루 40, 50잔씩 마십니다. 차는 건강에 좋을 뿐더러 항암작용을 하는 물질을 갖고 있지요."

정말 차를 마셔서인지 그는 피부가 매우 좋아 보인다. 인천시지정 무형문화재 11호 '규방다례' 보유자인 그는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한국차문화대학원 원장 등 차와 관련한 많은 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차의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차문화 보급을 위해 이 이사장은 매년 차와 관련한 전국행사를 연다. 오는 5월 '제31회 차의 날 행사'와 '제22회 차음식 경연대회'가 그것이다.

"전국적으로 3천여 명이 인천시청 앞에 모여 차 경연대회를 벌입니다. 제각기 전통차를 소개하고 차를 재료로 한 음식을 소개하는 자리이지요."

차의 날 행사와 차음식 경연대회는 서울민속박물관 앞 등 전국을 돌며 개최했지만 올해는 차의 본고장으로 우뚝 선 인천에서 열린다. 오는 9월 열리는 '제12회 전국인설차문화전 차예절경연대회' 역시 전국적으로 관심을 끄는 규모 있는 행사다.

"차의 날 행사가 어른들을 위한 문화행사라면 인설차문화전은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설차문화전 참가자는 유치원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로 하여금 1년 간 배운 차예절을 경연대회를 통해 선보이도록 해, 차문화를 익히도록 하려는 게 목적이다.


"다례라고 하지 않아요? 차를 배우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절을 익힐 수 있습니다. 두 손으로 따르고 받고 하는 동안 예의범절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차예절을 익힌 학생들은 방석을 밀어놓고 절을 하고 침대나 소파에서 뛰지 않는다"며 "교권이 무너진 요즘 시대, 차예절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한결 성숙해 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이사장은 이를 위해 늘 다기와 차를 보자기에 싸서 다닌다. 언제 어디서나 학생들에게 차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인천은 물론 전국의 학교를 누비며 13년간 가르친 학생만도 수십 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대부분 사비로 충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공수레, 공수거, 사람은 맨손으로 나왔다가 맨손으로 돌아가잖아요."

 

   
 


지금은 그의 지도를 받은 사범들이 각 학교에 나가 차예절을 교육하는 중이다. 차사범들은 일반 주부에서부터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옛날에는 차를 마시자고 할 때 '도를 마십시다'라고 했습니다. 차는 곧 '예'이고 '도'인 셈이죠."

차의 이름이 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 가, 설, 천이란 말도 갖고 있다. 차가 이처럼 1천300년전 부터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것은 차의 세계가 광활하다는 뜻이다.

"차는 불교에서 말하는 선과 똑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차를 대할 때는 참선을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란 말이지요."

이귀례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은 '다선일미'란 말을 언급하며 차를 마시는 것은 애국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차를 마시면 국민들이 건강해지니 국력이 강해지고, 차를 키우며 산림녹화를 이룰 수 있으며, 농촌의 수익증대에 기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1석3조라는 것이다. 이렇게 차의 전문가가 된 이유는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할아버지가 동학운동을 하셨는데, 함께 동학하시는 분들이 찾아오면 차심부름을 했거든요. 규방다례란 말이 바로 안방, 규수방 안에서의 차예절이라는 뜻이지요."

규방다례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그는 재인천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무형문화대축제와 무형문화재기록화사업을 통해 인천의 무형문화재를 전국에 알리고 보존, 전승활동을 통해 맥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지난해 11월엔 2010 인천무형문화재 축제가 인천 남동구청 대강당에서 펼쳐졌다. 궁시장, 완초장, 화각장, 단소장, 대금장, 규방다례자수장, 단청장, 목조각장 등 당시 행사에선 인천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총출동했다. 또 공연으로 범패와 작법무, 삼현육각, 인천근해 갯가노래 뱃노래, 강화용두레질소리 등 다채로운 인천의 예술이 무대를 달궜다.

"기능장, 예능장이 모두 나와 지금까지 전승해온 자료들이 어디까지이며 미흡한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음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 자리였어요."

그는 "문화란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이 배어 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숨결"이라며 "문화가 현시적으로 드러난 무형문화재엔 슬픔과 고뇌의 역사도 있고 인간미 넘치는 감동이 살아 숨 쉬며 기쁨과 환희의 몸짓도 담겨 있다"고 말한다.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정신문화이고, 이를 구현하는 것이 무형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이귀례 이사장이 다시 찻상 앞에 앉는다. 두 손으로 차를 따르는 그의 두 손에서 '차의 거장'이 자아내는 관록이 묻어난다.

"한 잔 더 드세요."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 이귀례 이사장은 …

●약력
- 인천시지정 무형문화재 11호 규방다례 보유자
- 사)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 사)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 한국차문화대학원 원장
- 가천박물관 관장
- 사)인천시박물관협의회 이사장
- 사)재인천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

●상훈
- 제2회 초의 문화상
- 문화훈장 보관장 수훈
- 제6회 명원차문화대상 수상
- 제20회 인천교육대상 수상
- 제35대 신사임당 추재

●저서
- 한국의 차문화, 우리 차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규방다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