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초 인천불교총연합회장 새해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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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초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이 신묘년을 종교와 사회, 종교와 종교 간'소통의 한 해'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선식기자 ss2chung@itimes.co.kr

수처작주(隨處作主). '언제 어디서나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박일초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은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사자성어의 의미는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인 행세를 하라는 뜻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12월8일 인천불교총연합회 26대 회장으로 선출된 일초 스님은 "앞으로 2년 간의 임기동안 주인행세가 아닌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자세로 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직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다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종교단체, 인천시, 시민들이 수처작주의자세로 신묘년을 살아간다면 자비와 행복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종교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일까.
"지역 사회 한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제가 취임하자마자 수봉공원 인천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북한의 포격으로 사망한 해병대원과 민간인들을 위한 '위령천도제'를 열기 위해서였죠."
지난해 12월 8일 취임한 그는 4일 째인 12일, 연평도 포격 희생자를 위한 봉행과 성금·쌀 전달로 종교의 수처작주를 실행했다. 그렇게 한달 여가 지난 2011년 신묘년을 맞는 박 회장의 새해 계획은 그다지 거창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해 출마했을 때 스님들에게 말했습니다. 지키지 못할 것은 말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섯 가지 정도 되더군요."
박 회장이 회원들에게 한 첫 번째 약속은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인천불교총연합회 만들기였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정보화 시대 아니겠어요? 불교 소식을 알려면 사이버공간에서 빨리빨리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그래서 홈페이지 개설을 약속했고 지금 운영 중입니다."
첫 공약은 실현한 셈이다. 두 번째로 약속한 것은 연합회의 법인화였다.
"제가 회장이 되기 전까지 인천불교계는 사실상 보수, 진보 두 개 단체로 양분돼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법인화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그는 선거를 두 번 치러야 했다. 한번은 진보진영 회원들을 대상으로, 또 한번은 보수진영 회원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한 것이다. 4년 전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인천불교계는 지금까지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을 해왔다. 그러나 박 회장이 양쪽 진영 모두에서 찬성표를 얻어냄으로써 화합의 길을 가게 됐다. 그는 이번 기회에 법인화를 함으로써 지난 4년과 같은 폐단을 없애겠다는 구상이다.
"사회 지도층과의 소통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스님들은 보통 나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교육도 그렇게 받구요. 그러다보니 저희가 하는 일이 잘 알려지지가 않는거예요."
박 회장은 "스님들이 너무 조용하다보니 마치 불교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을 함으로써 불교의 이미지를 더욱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소통은 다른 종교와의 소통도 포함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땅에서 시·도로 갈라지고 학연 지연으로 갈라졌는데도 잘 굴러가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그런데 갈라진 틈을 메꾸고 채워나간다면 훨씬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그가 말하는 종교간 소통은 기독교, 천주교와 같은 다른 종교와의 화합을 가리킨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서울 조계사 앞에 트리를 해 놓았었지요. 이는 불교가 기독교에 손을 내민 것으로 봐야 합니다."
절 앞에서 트리를 보고, 교회에서 연등을 보는 세상을 그는 희망한다. 종교 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갈때 시민들도 좋은 시선으로 종교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간 소통과 대통합을 종교가 먼저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소외계층을 보듬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우리 사회엔 현재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잖아요. 그에 따른 문제도 발생하기 마련이지요. 어쨌거나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사는 이런 '글로벌 빌리지'(지구촌)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외국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박 회장은 다문화 가정, 홀몸노인, 결손가정과 같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따뜻하게 끌어안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이야말로 부처님의 뜻이고 자비이기 때문이다. 고마운 건 연합회 회원들이 공약으로 내건 자신의 뜻을 모두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공약을 듣고 그를 회장으로 선출한 건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0-나호 '범패·작법무' 보유자이자 인천시 무형문화제 15호 '인천수륙재' 보유자다. 범패 작법무는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합천으로 옮길 때 추었던 춤이다.
"고려사 기록에 보면 강화에서 해인사로 대장경을 옮길 때 왕이 앞서고 승려들이 나비와 바라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인천에서의 바라춤의 기원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바라춤은 신문왕 2년(689)에 시작돼 고려시대 향발무가 됐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는 1398년 용산강(지금의 한강)에 친히 행차에 인천 강화의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판이 이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때 승려들이 북을 취며 취타를 불며 대장경이 든 함을 이운했다. 이 '경함이운' 행사에서 요잡바라와 명바라춤, 나비춤 등이 봉행됐는데 이때 인천에서 처음으로 바라춤과 나비춤이 추어졌다고 그는 말한다.

   
 
"올해가 초조대장경을 만든지 꼭 1천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년 전 제가 대장경 행사를 인천시에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예산이 크게 부족해 결국 하지를 못했어요. 팔만대장경의 본 고장인 인천에서 대장경 1천주년 기념사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력 3월3일 약사사에서 주로 열리는 '인천수륙재'는 인천에서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영혼들을 위한 행사다.
"한반도의 심장인 인천은 900여 회가 넘는 전란이 있었습니다. 고려왕조는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수륙재를 열어 전쟁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했습니다. 수륙재는 불교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유교국가인 조선조차 여러 곳에서 열었을 정도였죠."
인천불교인들의 화합, 종교의 사회참여, 종교 간 소통…. 박일초 회장의 새해 얼굴에서 부지런한 토끼의 움직임이 스쳐 지나갔다.
/김진국기자 freebird @itimes.co.kr


<박일초 스님은…>

-본명 : 치훈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5호 인천수륙재 보유,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0-나호 범패·작법무 보유자

-사단법인 인천시 무형문화재 공연단체 연합회 이사장

-사단법인 인해전통문화예술원 이사장

-사단법인 대한불교 삼계종 총무원장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