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덕담으로 '꿈과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그 꿈과 희망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걸 현실로 보지 않았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어찌 꿈과 희망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으랴. 꿈과 희망은 미래를 위한 나침판이다.
꿈과 희망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지만, 특히 현재의 상황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런데 세상 일이란 묘한 것이어서 좋은 것은 한꺼번에 몰려 있고, 어려운 것도 한 곳에 몰려 있다. 여유 있는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더 꿈과 희망이 필요한 데도, 어려운 사람이 꿈과 희망을 갖기가 더 어렵다. 그들은 살기가 바쁘고, 그들에게 현실은 너무 급박하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으라고 하는 것처럼 들릴 지 모른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어서 이 뜨겁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오직 모래바람만이 귓전을 때리는 사막을 벗어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는 분명히 나아졌다. 이전 세대가 만져보지도 못했던 개인용 PC와 핸드폰이 생필품인 부자 나라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은 벌써 옛 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는 원자력 발전소 기술을 수출할 만큼 국가적 인지도와 국민적 자부심도 높아졌다.
대한민국의 살림살이는 분명 나아졌는데 대한민국의 서민들이 내는 신음소리는 깊어만 가고 있어 새해 아침이 기쁘지만은 않다.
2009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해 자살자 수는 1만5천413명으로 하루 평균 42명이 목숨을 끊는다. 자살 이유는 고단한 시대 상황과 병리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상당 수는 빈곤, 즉 가난 때문이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아니 절망스럽다. 참으로 한심한 정치인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 우리 서민들만 불쌍하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동안 정부는 무얼 했나. 대통령은, 아니 주민들을 대표한 국회의원들은 무얼 했나. 거대한 부실 덩어리 재벌을 양산하고, 재벌과 결탁하여 정치 자금을 챙기고, 국민의 세금으로 부정부패로 남은 부실기업 뒤치다거리 하기에 급급한 그들은 결국 착한 서민들의 주름살만 늘려 놓았다.
이제 정부가 그동안 서민들에게 진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 새해에 정부와 정치권은 4대강 보다는, 단편적인 무상급식보다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서민들이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표를 의식한 가식적인 정책이 아닌 진정으로 서민들의 행복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 집행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설립돼 2006년에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적선이 아니라 평등의 기회"라고 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아니 정치권은 이러한 평등의 기회를 주었는지.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선심 쓰듯이 돈 몇 푼씩 나누어 주고 할 일 다했다고 목에 힘주지는 않았는지. 새해 아침에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신용 불량자로 몰아 사회에서 퇴출시키는데 앞장 서왔지 진정 그들이 가난을 벗어 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결국 우리 사회구조가,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이 우리 삶을 포기하게 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희망'과 '꿈' 일지도 모른다. 현실이 너무 각박하여 도대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그 때에도 억지로라도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사는 것이 급급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워도 밑져보아야 본전이니 한 번 희망을 가져보자. 새해에는 모두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이기영 경기본사 정치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