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터전 떠난 주민 최옥선씨
   
▲ 최옥선(56)씨가 삽시간에 쑥대밭이 돼버린 연평면 골목길에서 지난해 포격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언제쯤 예전 생활로 돌아가려나.'최씨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연평도=정선식기자 ss2chung@itimes.co.kr


어렵사리 섭외가 성사됐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별안간 마루에 부려진 배추 궤짝 여럿이 눈에 든다. 한 아주머니가 이리저리 배추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장을 담그려는 겐가."저 왔습니다" 인기척을 냈다. "아, 네~" 연평도서 30년 가까이 살았다는 최옥선(56)씨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후 한 동안 섬을 떠났다가 하루 전 들어왔다 한다. 배만 뜨면 곧 다시 떠나려는 참이라신다. 그런데 웬 배추 다듬기일까. 지난 12월 어느 날, 최씨와 가진 인터뷰다.


포격 당시 놀란 가슴에 무작정 내달려

최씨 가족은 남편과 아들 하나, 전부 셋이라 했다. 인터뷰하러 간 날, 남편과 아들은 밖에 나가고 없었다.
지난해 11월 23일 포격 당시 얘기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볼 일이 있어 막 연평 선착장으로 나가려던 참이었죠. 승합차에 타려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포격이 들렸어요. '무슨 일이지?' 하는데 꽝하고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난 거에요. 무턱대고 땅에 엎어졌지. 그러더니 마을 곳곳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계속 터지더라구요. 차를 몰 생각은 아예 할 수가 없었죠.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1㎞ 떨어진 선착장으로 내달린 거야. 아이고…."
숨가쁜 최씨의 '증언'은 계속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 군이 오발한 게 아닌가 생각했지요. 그 날 아침 군에서 사격훈련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런데 선착장으로 앞만 보고 뛰는데 뒤에서 계속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나는 거에요. 숨이 턱까지 차서 선착장에 가보니 마을 전체에 시커먼 연기가 꽉 찼더라구요. 그 때 섬에 남아있던 아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방공호로 오라고요. 포격이 잦아든 사이 다시 마을로 뛰어들어가 방공호로 들어갔죠. 그리고 두 번째 포격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꽝, 꽝, 꽝 한거지."
최씨는 "그날 밤 집으로 가보니 다행히 포탄을 맞진 않았더라구요. 그런데 집 앞 골목에 난리가 났더라구. 섬 전체가 다 그랬지. '아이고, 전쟁이 났구나'하고 생각했지. 그러고 이틀 있다가 25일 가족들하고 섬을 빠져나간 거에요"라고 전했다.


연평살이 25년, "이런 일 있을 줄이야"

최씨는 지난 1985년 인천에서 연평도로 들어왔다고 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뒤 짐을 싸 연평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여기 연평 사람들 다 그럴 거에요. 그냥 공기 좋고 한적한 곳에서 살면 좋겠다 싶어 온 거죠. 그러고 여태껏 살아온 거에요. 북한이 코 앞이라지만 이번 같은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지요."
연평에 이사온지 7년 만인 1992년 최씨는 남편과 민박집을 열었다. 연평 선착장에서 마을로 곧장 이어지는 연평대로 앞이다. 최씨의 민박에서 곧장 이어지는 연평대로 뒷 골목은 이번에 포격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다.
다방, 식당, 치킨집 등등. 예전엔 사람들이 가장 붐볐던 데다. 도로 건너는 바로 바다다. 최씨는 민박집과 함께 조그만 배 한척도 부렸다. 어업이랄 것까진 아니었다.
이번 포격 전까지 풍족하진 않았지만 최씨네는 그럭저럭 먹고 살았다.
최씨는 "군부대가 많은 곳이다보니 나라에서 발주하는 공사도 종종 있었고 그래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때마다 있었어요. 군인들 면회 오는 가족들도 있었고. 휴양이나 관광지가 아니니까 사람이 붐비진 않았지만 그래도 근근히 방은 찼죠"라고 했다.

 

   
 


"다시 예전처럼 살았으면"

최씨는 인천시와 정부가 마련했다는 경기도 김포시 양곡지구 아파트에 가서 살 작정이라 했다. 때 아닌 '타향살이'에 대해 심경을 묻자 최씨의 얼굴에 심란함이 스쳐간다.
"피난이지 피난. 이런 일이 있을 줄 상상이나 했나요. 가서 어찌 살아야 할지…. 찜찔방 생활이야 가까스로 끝났지만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한동안 말을 않던 최씨가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플라스틱 궤짝에 담아놓은 배추를 하나씩 꺼내든다. 배추는 족히 50포기는 넘어 뵈는 양이다.
"며칠 새 떠나신다더니 김치 담그시려고요?" 궁금해서 물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일단 다듬어 놓기라도 해야지요. 빨리 상황이 좋아져서 얼른 김치 담그러 오면 좋겠네요." 척척 날렵한 손놀림에 시들어 뜯어낸 배추 겉잎이 어느새 수북해졌다.
언제고 다시 돌아와 평화롭던 삶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넌지시 전해온다. 이삿짐을 싸러 들어오든 이미 싸서 떠나는 배에 오르든 연평 사람 중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최씨에게 이번 포격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북한이 민간인 거주지역에 직접 포탄을 날릴 줄은 정말 몰랐지요. 워낙 북한하고 가까우니까 은연 중에 늘 불안한 마음이야 있었지만…."
최씨가 말을 이었다. "10년 전 1차 연평해전하고 몇 년 뒤 1차 전투 때하고는 느낌이 전혀 달라요. 같을 수가 없죠. 올 봄 천안함 때 우리 장병 수십 명이 희생됐어도 지금 같진 않았지."
정부에 쓴 소리 아닌 쓴 소리도 했다. "서해 5도가 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터지고보니 그동안 정부가 뭔가 잘못해왔다는 생각은 들지요. 정치나 군사문제 같은 건 잘 모르니까 일일이 말을 할 순 없지만 여하튼 국민은 국가가 지켜줄 것으로 믿고 사는 건데 지금 같아서야…."
아울러 당부했다. "연평도를 군사요새로 만들거나 무인도로 만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정부한테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섬 사람들이 예전처럼 살게 해주는 거에요. 그래야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겠어요?"
최씨가 집 주변을 보여준다며 대문을 나선다. 집 앞 길 건너에 최씨와 남편이 운전하는 승합차가 보인다. 포격 때 파편에 맞았는지 차창 대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최씨는 "경황이 없어 고치지도 못했지. 보상문제도 있고"라고 했다.
최씨가 민박집 옆 골목으로 들어선다. 잿더미만 남은 곳이 그 전엔 사람들이 얘기도 나누고 대포잔도 기울이던 주점이라 했다. 길을 안내하는 최씨의 발 밑에서 깨진 유리니, 휘어진 창틀이니 하는 포격잔해들이 밟힌다. '쩌걱쩌걱' 평화롭던 골목이 삽시간에 이렇게 난장판이 돼버렸다 한다.


"웬만한 건 다 챙겼는데 … "

이틀 뒤 최씨를 다시 찾아갔다. 오늘은 나흘 만에 연평 선착장에 배가 뜬다는 날이다.
"짐 싸시나 봐요" 최씨와 최씨의 아들이 짐 나르고 싸기에 여념이 없다.
"배 뜬다니 나가봐야지요, 웬만한 건 다 챙기긴 했는데…" 쨍한 추위에 최씨의 입에서 말 할 때마다 입김이 연신 배어 나온다. 그래도 이틀 전보다 표정은 한결 밝다.
최씨가 다듬던 배추는 마루 한 구석 플라스틱 궤짝에 다소곳이 놓여 있다.
"얼른 다시 돌아와서 늦은 김장이라도 담가야지.(웃음) 그래도 다 잘될 거라는 희망 갖고 떠납니다. 언제든 다시 돌아와야지요."
/연평도=노승환기자 todif77@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