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뒷산에서 본 연평도 전경. 평화시 연평도는 그 자체가 한 폭의 산수화다. 북한의 포격이 한순간 이를 앗아갔으나 올해 연평주민들은 반드시'산수화'를 되살릴 것이다. /연평도=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연평도는 늘 살가왔다. 비록 조막떼기만하지만 밭을 일구고, 꽃게를 다듬으며, 육지에서 온 타지인을 맞으며 연평의 삶을 얘기할 땐 마냥 즐거웠다. 때때로 섬을 떠나 육지에서 밤을 지샐 땐 이악스럽던 연평의 삶이 늘 그리웠다. 시린 바람에도, 고약한 파도에도 늘 웃음과 재잘거림으로 채웠던 것이 연평의 삶이었다. 연평 사람들은 그렇게 섬과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지난해 11월23일, 벌건 대낮에 일어난 북한의 포격은 연평의 삶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살갑던 동네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혼비백산해 섬을 떠났다.
설마했던 전쟁의 그림자가 연평을 덮쳤을 때, 연평은 더이상 주민들의 포근한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하늘을 가르고 공기를 찢으며 집과 담장을 무너뜨린 포격의 참화는 '목불인견'이었다. 뒷집의 벽은 새까맣게 탔으며, 앞 집 유리창은 모두 깨져 안팎으로 파편을 날리며 흩어졌다. 동네 꼬마들이 조막손에 동전을 감추고 나와 군것질 거리를 사먹던 동네수퍼의 진열대와 물건들은 포격에 그을리고 부서져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골목길은 더이상 아이들이 뛰어놀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마을 어귀부터 풍기는 화약냄새는 연평의 추억마저 앗아갔다.
섬을 떠나야했던 연평사람들은 찜질방을 전전해야했다. 매순간이 고통이었다. 동네에 떨어진 포탄으로 골목골목이 시꺼멓게 그을린 모습이 늘 떠올랐다. 이웃들이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며 섬을 빠져나가던 순간은 기억하고 싶지않았다.
주민들이 떠난 연평도는 일찌감치 어둠이 내렸고, 가장 늦게 아침이 다가왔다. 연평이 옛 모습을 찾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들이 새삼 콧노래를 부르려면 더욱 많은 세월이 지나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끝내 연평을 등질 수 없다. 그들만의 삶의 터전이기에 모른 척 할 순 없었다. 그들은 결국 다시 연평에 들어서고 있다. 연평은 포격의 아픔조차 숨긴 채 늘 그렇게 변함없이 그들을 맞았다.
포격의 고통은 아직도 연평을 암울하게 휘감고 있다. 민박집 어귀, 선착장 주변, 중국집 골목 등에서 과거의 연평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끝내 연평사람들은 또 다른 노래를 부를 것이다. 파시가 없어져도, 그들은 즐겁게 삶을 지탱해왔다. 이제 포격의 아픔을 딛고 다시 희망가를 부를 것이다. 연평은 늘 그랬다. 전쟁을 피해 찾아든 사람도, 연평을 등졌다 끝내 못잊어 되돌아온 이들도 연평은 늘 따스하게 맞아 안았다.
연평사람들의 입에서 불려질 연평가는 그래서 희망을 담게 될 것이다. 아픔을 딛고 선 희망만이 늘 살아있기 마련이다.
이들이 부를 연평가는 서해를 담아낼 희망가일 것이다. 그래서 연평, 연평 사람들은 늘 살갑다.
/조태현기자 choth@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