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엄마가 내게 해준 게 뭐 있어.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세상에 누가 있어, 피붙이라고는 저하고 나뿐인데, 저 하나 보고 사는 나는 뭐야. 내가 지금껏 저에게 쏟은 공이 얼만데…."
이 얘기는 한 친구가 내게 전한 자신의 처와 장모간 실제대화 내용 중 일부다. 사연은 이렇다. 어느날 술을 건하게 하신 장모가 자신의 집을 찾았다. 집에 들어선 장모가 사위를 붙잡고 하소연 하듯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딸인 자신의 처가 다짜고짜 "그만 좀 하라"며 화를 내며 집을 나가 버렸다. 이후 장모의 넉두리는 두시간여 이어졌다.
얘기를 듣고 있는 친구 입장에선 장모 하소연이 참으로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딸을 너무 사랑해 저러시는구나하고 이해하면서도 너무 일방적이어서 마음 한편으론 서운함도 없지 않았다 한다. 정작 큰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두시간 뒤 집에 돌아온 아내가 여전히 같은 투의 말을 이어가고 있는 엄마를 보고 다짜고짜 "엄마 이제 그만 해, 엄마가 뭐 잘한게 있다고 늦은 시간 술에 취해 찾아와 사위를 못살게 하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그러자 곧바로 장모가 반격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져 앞으로 서로 보지말자는 말로 대화의 끝을 맺었다고 한다.
친구가 "장모가 서운하셔서 저러는데 딸인 당신이 좀 참지 그랬어"하고 거들자, 부인 왈 "엄마가 왜 저리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당신이 무능하니까 당신을 무시하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몰아부치는 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며칠후 다시 만난 친구에게 그 이후 상황을 묻자, 불과 하루만에 언제 그랬냐는듯 평소 모습으로 돌아 온 모녀 사이를 보고 더욱 황당했다고 한다. 결국 두 모녀 사이에 벌어진 일은 어릴적 엄마에 대한 아픈 상처를 간직한 딸이 술을 먹고와 주정하는 듯한 엄마태도가 싫었고, 딸을 위해 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엄마는 자신의 넋두리 하나 들어주지 않는 딸에 대한 서운함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끝을 맺었다고 한다.
살다보면 주변에 이와 유사한 일로 고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람들은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경우 목표는 하나이면서도 '다름'과 '차이' 문제로 갈등을 겪곤 한다. 이럴 경우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면 그 후유증은 오래 지속된다. 차라리 솔직히 심정을 털어놓고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더 낫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사소한 문제로 중요한 것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개인은 물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곧 상대방과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름'을 정당화하기 위한 아집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다시말해 '나는 분명히 너와 다르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보는 지배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여튼 차이와 다름으로 구분을 짓고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극단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저항이 아닌 공존을 위해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필요하다. 두 모녀의 전례에서 보듯 서로의 생각의 다름과 차이에도 어울려 살아가는 삶은 곧 문화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