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우 경기본사 경제부장

1989년초 여름인 6월24일 오후 고양군(현 고양시) 일산읍 일산리 소나무가 울창한 마을 뒷산에서 이 마을 주민인 박용술씨(당시 55세)가 일산신도시 개발 백지화를 주장하며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벌써 3번째다. 이 사건 발생 두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4월27일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공급을 국민에게 약속했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 발표가 나자 주민들은 밤낮으로 회의를 한 뒤 일산신도시반대투쟁위원회를 조직, 마을입구를 봉쇄한 뒤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했다. 밖으론 강력한 반대의지를 나타냈다.
이 와중에 5월 고양군 일산읍 백석6리에 살던 강병채(당시 54세)씨가 토지수용을 비관, 자살을 했다. 아들과 토지수용과 앞으로의 생활대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강씨는 정부에 의해 현 생활이 송두리채 뽑히는 것과 미래의 불확실성 등에 대해 불안해하다 음독자살했다. 강씨 사망을 반대투쟁위원회장으로 치르면서 주민불만이 폭발했다.
여당 당사 점거 농성을 하던 중 세입자 2명이 생활고와 생계대책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앞서 백석3리에 살던 이은진씨(당시 67세)가 또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이어 박씨도 목숨을 끊었다.
3분의 2 이상이 절대농지였으며 평야지대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당시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과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했다.
결국 이 지역은 후동, 저전, 밤가시, 문화촌 등 자연부락 이름은 사라지고 그 위에 신도시가 들어섰다. 지역공동체가 무너졌고 가족공동체가 해체됐다. 원주민들도 80% 이상이 환경미화원, 경비, 파출부 생활을 해 왔다. 토지보상 이후 삶을 보장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일산신도시와 1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파주운정3지구에서 또다시 택지개발과 관련된 자살소문이 들려왔다. 택지지구로 지정된지 4년이나 지났지만 정부와 LH공사가 토지보상은 안해주고 개발지구 취소를 논의하고 있어 주민 7명이 대출이자 부담으로 자살했다는 것.
정부와 LH측은 최근 14명이 자살한 것은 맞나 자살원인을 확인한 결과 토지보상이 직접원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끊임없이 불안해 하고 있다.
이 지구 토지수용비상대책위원회가 있는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 주변에는 운정3지구 비대위원들이 '보상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어 전운이 돌고 있다. 정부보상만 믿고 미리 돈을 금융기관이나 사채 등을 빌려 공장이나 대체농지를 확보한 주민들은 보상이 늦어지면서 빚에 쪼들려 파탄 일보 직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주민은 2007년 택지지구로 지정되면서 사용할 수 없어 20억원을 들여 수용외 지역 땅을 구했는데 보상이 안돼 1년 이자만 7억~8억여원씩 내고 있는 실정이다.
비대위는 정부보상만 믿고 금융권 등에서 돈을 빌린 주민들이 2천600여명에 부채만 1조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주민들은 늘어나는 대출이자 때문에 가정 해체위기에 몰리면서 자살충동까지 느낀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정부와 LH는 지난 30여년간 전국에서 수백년동안 그 지역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원주민들의 터전을 수용해 개발해 왔다. 토지개발자를 위한 각종 개발법을 동원해 그들의 터전에 약간의 보상을 주고 멋진 마천루를 지어왔다. 그리고 발전됐다고 했다. 그런데 20년전에 보았던 개발과 관련된 원주민들과 토지수용자들의 자살이 현재에도 또다시 운운되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다.
앞으로 정부는 원주민의 눈물위에 지어지는 신도시보다는 누구나 행복하게 삶을 살 수 있는 도시개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20여년전 일산신도시 반대에 중심에 있었던 한 원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원주민들의 현재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통계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자료들이 앞으로의 개발에 참고되고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