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
   
▲ 지난 10월 29일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만난 고은 시인은 희수(喜壽)가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강연과 강의, 집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대사를 온 몸으로 끌어 안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 불꽃. 그의 뒷 배경이 된 노란 낙엽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양진수기자 eos1290@itimes.co.kr


시인 고은(77)은 노벨문학상 단골후보다. 8년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해는 특히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아무 일 없었다. 수백명의 신문·방송기자들이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고은 시인 자택으로 몰려가 진을 쳤다. 정작 시인은 아침 일찍 집을 비웠다. 고은 시인은 올해도 낭보가 들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이에 앞서 그는 2010년 한글날을 앞두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인 고은 시인은 "50% 공정을 넘긴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작년 국회에서 의결되고 배정받는 기금 중에서 편찬사업비를 지원받지 못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며 "사업이 중단되면 그야말로 민족적 재난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한마음으로 나서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무사히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래저래 2010년 가을을 보내는 고은 시인의 마음은 편치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만난 고은 시인은 담담해 보였다. 희수(喜壽)가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강연과 강의, 집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히려 잔인한 가을에 취해 있었다.


▲모국어에 대한 사명
 

   
 


요즘 고은 시인 얼굴에 주름살이 더 늘었다.
지난 2004년 남과 북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를 구성해 남북은 물론 중국 연길, 중앙아시아 등 해외 동포 거주지역을 포함해 우리 겨레가 사용하고 있는 지역어, 생활언어, 문헌어휘 등을 조사·채집하고 남북의 이질화된 어문규범을 단일화해 30만 단어 규모의 큰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언어의 통일사업을 시작한지 5년. 50%의 공정을 보이며 큰 성과를 눈 앞에 두고 현 정부 들어서 예상치 못한 장애를 만났다. 문제는 '돈'. 연 30억 예산 가운데 기관운영비 16억원을 제외한 실질적 사업(남북이 머리 맞대고 토론- 합의-결정) 비용이 전액 삭감된 것.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온 고은 시인은 긴 한숨을 쉬며 "현실이 애통하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은 흩어진 모국어를 하나의 모국어로 결집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통일 이후를 대비한 절박한 준비작업입니다. 특히 세계화로 인해 21세기가 끝날 무렵 세계의 많은 언어가 소멸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그야말로 '모국어의 위기시대'에 봉착했는데 이번 사업은 단순히 남북관계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작업"이라고 고은 시인은 강조했다.
노년에 왜 하필 골치아픈 자리(이사장직)를 맡아 사서 고생이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고은 시인은 단호했다.
"태어나서 모국어를 사용하고 몇 십 년 동안 모국어로 시인 생활을 해 온 사람으로서 언제나 모국어에 큰 빚을 지고 있어 남은 생애를 걸고 남북 통합 국어사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끝까지 완주할 것입니다."


 

   
▲ 고은 시인 친필싸인

▲노벨문학상 "모르겠습니다"

시인을 만났으니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올해도 기자들이 수백 명 찾아오고, 국민들의 기대가 컸는데 부담스럽지 않았느냐"고 우문을 던졌다. 그러나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 딱 잘라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다른 이야기 합시다."
스웨덴 한림원이 최종 후보자 5명에 대해서는 발표 5일전에 전화를 걸어 "혹시 여행을 갈 경우 행선지를 미리 알려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하는데 혹시 올해 전화를 받았는지에 대해 고은 시인은 단답형으로 정중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노벨문학상에 대해 더이상 할말 없습니다."
벌써 몇 해째 노벨상 철만 돌아오면 언론에 시달리니 그럴 만도 하다. '수상 소감'을 물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올해도 노벨문학상은 고은 시인의 차지가 아니었기에 더이상 고문(?)하지 않기로 했다.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 '만인보(萬人譜)'

그래서 30년만에 완간된 '만인보(萬人譜)' 이야기를 꺼냈다. 고은 시인의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가 지난 4월 9일 총 작품 수 4천1편, 전 30권으로 완간됐다. 만인보는 시인이 1980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구상한 것으로 30년 만에 마무리됐다.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조연급 정도만 포함해도 등장인물이 5천600여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한국 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수식어 외에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라는 평도 듣는다. 시인은 1권 서두에 "만인보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라고 적었다.
고은 시인은 "아무 연고지도 없는 경기도 안성에서 산지 어느새 30여년입니다. 특히 올해 만인보도 안성에서 탈고했으니 아주 의미 깊은 고장입니다. 그래서 전 경기도 귀신입니다. 또 경기도 도깨비이기도 합니다."

▲"인천에서 밴댕이에 소주 한잔 합시다"
인간 고은은 평범했다. 평소 애주가로 유명한 고은 시인은 대학 강연회에서 물 대신 술을 요청해 주최측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주량이요? 모릅니다. 진정한 술은 내가 술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조차 몰라야 합니다"라고 말하던 고은 시인은 기자에게 "조만간 인천에서 밴댕이에 소주 한 잔 합시다"며 입맛을 다셨다.
고은 시인은 70대 노인이 아니었다. 우리 시대 거목이고 현대사를 온 몸으로 끌어 안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 불꽃이었다.
인터뷰 후 내년 가을에 꼭 뵙으면 좋겠다는 기자의 희망사항에 두 손을 꼭 잡고 배웅해주던 고은 시인. 올해 묵혀야 했던 '한국인 최초 고은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 기사를 2011년 가을에는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현숙기자 kang7891@itimes.co.kr

 

   
 


*고은 시인은 …  

1933년 4월 10일 전북 군산 출생. 본명 고은태. 1952년 출가한 고 시인은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10년간 승려로 지냈다.
1958년 시 '폐결핵'을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현대시'에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을 출간했다. 74년 백낙청, 이문구 등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하고 초대 대표간사를 지냈다.
1989년 이래 영미, 독일, 프랑스, 스웨덴을 포함 20여 개 국어로 시선 및 시선집이 번역됐다. 한국문학상(74년), 대산문학상(94년), 만해문학상(98년)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 '입산', '백두산', '만인보', 수필집 '광야에서의 사색', 소설 '화엄경' 등 130여권의 저서를 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거쳤다. 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이며, 서울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