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이 어떻다고 하는데 내 인생과 야구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말을 한다.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이나 구단의 높은 분들과 애써 술이나 밥을 먹으러 다니지 않았다. 그 시간에 연습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인생철학 가운데 하나가 일일이 해명하지 않는 것이다."
야신 김성근(68)과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본 지바롯데에서 이승엽이 선수로, 김성근이 코치로 재직할 때 일이다.
이승엽 절친인 방송인 김제동이 응원 차 일본에 갔는데 그날따라 이승엽이 부진했다.
그날 새벽, 호텔에서 이승엽이 사라진 걸 알아챈 김제동이 우연히 밖을 내다보았는데 김성근과 늦도록 스윙연습을 하고 있었다.
훗날 김제동은 모 방송프로에서 이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김성근과 이승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말과 함께였다.
"힘들 땐 김성근 감독님이 내 마음을 헤아려주신다는 믿음이 내겐 있었다." (이승엽)
김성근(金星根)의 야구는 믿음이다.
프로 8개 구단 감독 중 유일하게 칠순이 다된 김성근 감독만이 일일이 선수들 펑고(수비 연습을 할 때 배트로 공을 쳐주는 사람)를 직접하고, 허리 굽혀가며 공을 줍는다. 또 포스트잇에 그날 선수들이 고쳐야 할 점을 일일이 적어준다.
쌍방울 감독시절 열악한 구단 사정으로 월급조차 밀려있는 상황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이 안타까워 자신의 사비를 털어 훈련비로 충당한 그다.
LG에서 쫒겨나 SK 감독을 맡기 전까지 성균관대까지 직접 지하철을 타고가 무보수로 대학 야구를 가르친 진정한 지도자다.
2002년 회갑연에서 김 감독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여러분을 다시 보니 38년 전 대한민국에 영구 귀국한 것은 생애 최고의 결정이었다는 자부심이 든다. 감독이기에 앞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여러분과 선수들 가족의 미래를 책임지려고 했다."


/대구=특별취재팀

▲김성근은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재일 교포 학생야구단, 동아대 선수를 거쳐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 1972년에 기업은행 감독으로 취임했다. 1973년 국가대표 코치직을 일임하고 충암고와 신일고의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후 1982년 OB 베어스 코치로 들어가면서 프로야구계에 발을 담그게 됐다. 1984년부터 OB 베어스,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감독직을 맡았고, 2005년 일본 지바롯데 순회 코치로 잠시 생활하다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02 한국시리즈 준우승(LG 트윈스), 2007, 2008 한국시리즈 2연패(SK와이번스), 2008년 9월 프로야구 통산 두 번째 1천승 달성, 2009 한국시리즈 준우승·2010 한국시리즈 우승(SK와이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