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경기본사 제2사회부장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5기 자치단체장들이 지난 8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러나 당선의 기쁨은 잠시잠깐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살림살이 사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자체들이 민선5기 들어 공통적으로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취임 초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성남시가 그렇고, 임금 삭감을 검토해 구성원간 갈등을 겪고 있는 화성시 역시 그렇다. 이들 외에도 많은 지자체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예산운용의 폭이 최악의 상황을 맞으면서 계획된 사업의 축소·백지화 또는 재조정에 들어가는 등 재정운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마음을 다잡은 자치단체장들이 속한 지역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반면, 벌써부터 조바심을 내고 '사심(私心)'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역은 구성원간 갈등이 시작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자치단체장이 '초심'을 잃고 '사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부작용도 속출한다.
전임자의 좋은 정책은 상대 당 출신자 또는 정치적 경쟁관계를 떠나 시민의 입장에서 승계받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길게 보면 오히려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치단체장들은 온갖 이유를 내세워 벌써부터 조바심을 내는 등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 어려운 재정여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취임과 동시에 새로 선출된 자치단체장의 시정구호와 슬로건 교체비로 수억원의 예산을 물쓰듯 하는가 하면 전임 시장의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해 수억원의 예산을 절약하는, 시민의 귀중한 세금을 내 돈처럼 아껴쓰는 경우로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결정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이면을 잘 들여다 보면 단순한 논리로만 접근하기도 어렵다. 자치단체장의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지역별 특화 사업이 결정되고 4년, 아니 그 이상의 미래가 결정지어지기 때문이다. 재정악화를 이유로 전임자 시절 추진되던 굵직한 사업들에 대해 재검토 또는 백지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현 자치단체장의 공약사항 이행을 위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새로 추진하는데 거침이 없다. 시민을 위한 정책적 판단에 앞서 정치적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인사도 그렇다. 새로운 자치단체장 취임과 동시에 제일 먼저 실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산하단체 인사다. 마치 점령군이나 되는 듯 전임 시장 때 임명된 산하단체장들의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단행된다. 엄연히 임기가 보장된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일사분란하게 자기 사람으로 채워지기 일쑤다. 누구하나 반문하지 않고 당연시 한다.
민선 5기 들어 9월과 10월 각 자치단체별로 대규모 인사가 단행됐다. 이번 인사는 여러 인사 가운데서도 현 자치단체장의 의중이 담긴 실질적인 첫 인사여서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부에선 인사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인사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버티는 사람에 대해 '전임 시장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니 명퇴나 외곽부서로의 자리 이동은 당연한 것'이란 논리로 밀어부치기 일쑤다. 이번에도 전임자 판박이 인사가 단행된 것이다.
그래서 민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공직내부에 불문율처럼 회자되는 말이 있다. 공직사회에서 제일 경계하고 싫어하는 단체장의 당선유형은 같은 사람 둘이서 번갈아가며 당선이 뒤바뀌는 경우이고, 가장 선호하는 유형은 유임되거나 매번 다른 당선자가 나오는 경우다. 단체장에 두사람이 번갈아가며 당락이 바뀌면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네편' '내편'으로 분류돼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졸은 장수따라 충성을 다할 뿐인데 장수가 바뀌면 졸을 편갈라 자기들 맘대로 재단하려 든다고…." 취임 100일을 맞은 자치단체장들은 '초심'과 '사심' 사이에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 짓는 진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