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문화부장


 

   
 

대학 다닐 때 공과대학 학생들을 '공돌이'라고 불렀다. 비하나 무시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잘 되는 공대생들에 대한 인문학도의 시기심 표출일 수도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척척 입사하는 공대생들을 바라보며 인문학도들은 대학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게 괴테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얘기하며, 진정한 인생의 가치는 빵이 아닌 문학과 철학에 있다며 서로를 위무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예비청년실업자들의 공허한 넋두리가 아니었다. 물질보다는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지향하며 살고싶다는 순수청년들의 소망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학가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인문계통 비인기학과들은 통폐합되거나 아예 폐지되고, 생소하지만 그럴 듯한 이름의 학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인문학은 자연으로 치면 동식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토양이라 할 수 있다. 산소같은 감성과 지식으로 오염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씻어주고 과학의 여러 부작용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인문학이 실용이란 미명의 학문에 밀려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교육계의 인문학 소외는 곧바로 사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들어선 인천시정부는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했다. 문화 정무부시장제를 언급했지만 쑥 들어간 지 오래다. 인천시립미술관의 설립계획은 불투명하고 올초 계획했던 시립관현국악단 역시 보류될 전망이다. 물론, 이런 하드웨어가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수조원의 빚을 떠맡은 시정부의 입장도 이해한다. 그러나 만약 시정부 안에 인문학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산적한 인천의 문화현안에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난 시정부가 내세운 기치는 '명품도시'였다. 도대체 명품도시가 무슨 얘기란 말인가. 지난 시정부의 명품도시는 발상에서부터 접근에 이르기까지 문제투성이였다. '사람이 사는 도시'를 하드웨어적인 '물건'으로 보며 사람을 제품으로 인식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저명한 인사는 "어떻게 사람 사는 삶의 터를 물건, 명품에 비교할 수 있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대학에서 인문학이 홀대를 받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천의 인문학을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 역시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인하대는 '한국학연구소'를, 인천대는 '인천학연구원'을 통해 명멸하는 인문학에 새로운 불씨를 피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한국학연구소는 인문학 진흥을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2007년 HK사업에 선정됐으며, 인천학연구원이 발간하는 '인천학연구'는 지난해 등재후보지가 되면서 인천학을 학문의 반열 위에 올려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연구소들의 성과가 연구로 끝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연구가 연구로 끝난다면 그건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연구는 현실생활에 접목해 발현할 때 비로소 유의미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시정부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부산은 지금 '창조도시비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전언이다. 내용은 없고 디자인만 갖고 움직이는 인천과 달리, 부산은 새로운 콘텐츠로 승부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창의도시, 창조도시는 창의적 사람이 많은 도시, 이런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제도와 조직, 기반시설이 있는 도시, 새로운 방식의 사업이 번창하는 도시를 말한다. 창의도시는 기존의 산업이나 인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여야 한다. 이를테면 '부산영화제'와 같은 문화콘텐츠나, 인문학 정보기술산업 등이 창의적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국제영화제로 지역사회 구심점을 이룬 부산이 새롭게 선언한 '창의도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기의 인천은 그 돌파구를 인문학의 융성과 창조적 문화콘텐츠 구축에서 찾아야 한다. 시는 대학을 비롯, 교육계 전체가 인문학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지원과 제도·기구를 만들고, 대학 역시 '실용도시'가 아닌 '사람의 도시'를 만드는 인재를 길러내길 바란다. 사람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