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왜 살려야 하는 것일까? 영국인과 미국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국인은 미국을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미국인의 표정이 의외로 어두웠다. 영국의 전통과 역사가 부러운 탓이었는데 부귀와 현대적인 것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파트가 현대적이라면 골목은 전통이다. 전통에는 조상들이 살아온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 가령 유행을 타지 않는 옷차림이나 수천 년 임상실험을 거친 상차림이나 불편해 보이지만 앉고 눕고 비와 추위를 견뎌내는 집 등이 그것이다. 넉넉하거나 잔치를 치른 사람은 이웃에게 술과 과일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은 절약과 검소로 안분지족(安分知足)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가훈으로 걸어놓고 사이좋게 산다. 무엇보다 이웃과의 대를 이은 교분으로 그 골목의 규범이 형성되어 있다는 등등.

그래서 착한 사람은 본받고 못된 사람을 경계하며 남녀노소가 이웃을 만들어 스스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 골목을 재개발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아무리 못나도 조상(祖上)은 재개발할 수 없다는 것을 가끔 잊어버리고 산다.

파리는 평원에 세워진 방사형 도시로 오직 높은 것은 에펠탑이고 모든 건축물은 5층 정도로 지붕높이가 칼로 자른 듯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이 도시도 변화를 이기지 못해 이른바 현대적인 것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교외에 세운 라데팡스다. 강남이나 일산, 분당 신도시 쯤 되는데 인천이라면 청라, 송도, 영종신도시와 비슷한 개념이다.

구도심과 신도시가 구분되어있는 것은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다. 북경에도 몽고어로 우물이라는 뜻의 후퉁(胡同)으로 유명한 골목이 있다. 100년 전만 해도 고급관리가 살던 곳이고 천년의 역사가 서린 곳인데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물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실록과 사진집이 줄을 잇고 있다.

인천의 골목들도 인사동이나 북촌처럼 거듭 살아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먼저 지난 100년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국민의 강박관념이 된 선진화, 현대화, 경쟁력 등등 모호한 모델을 부러워하고 맹목적으로 달려온 과욕과 허영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검소와 절약과 상부상조로 느리게 사는 철학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자족동네를 주민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거환경의 개선과 벽화 등의 미화작업 및 공원과 주차장 등등 외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공방을 만들고 이 골목 특유의 수제품이나 특산품이 세계화되도록 시정부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꾸준히 육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골목은 인천의 긍지가 되고 전통문화의 보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들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일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재개발의 미명으로 도시에 일방적인 선을 긋는 것은 원주민도 이주민도 모두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개항장, 차이나타운, 배다리, 달동네박물관 등은 인천 뿐 아니라 전국을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시민의 역사적 보금자리란 것을 이제 행정가들도 알아야만 한다. /양효성(자유기고가)



양효성씨=서울에서 부산까지 조선의 옛길인 죽령대로를 두 달간 도보로 여행한 기록인 '나의 옛길 탐사기1·2'권을 출간했다. 기원전 30년께 서한시대 말 환관 출신의 사유(史游)가 편찬한 한자교본 '사유 급취장'을 번역했으며, 이 책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