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경기본사 경제부장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대기업을 상대로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을 강조하고 나선 이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상생협력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제8차 녹색성장 보고대회 사전보고회의에서 청와대 참모들과 부처관계자들에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존 산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기업들의 상생 관련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현대기아차의 상생협력세미나를 시작으로 이달 10일 현대기아차의 협력사 원자재 수급 안정화 방침 발표, 12일 LG그룹의 상생협력 5대 전략과제 발표, 같은날 포스코의 원가 절감액을 협력사와 나누는 베너핑 셰어링 확대 결정, 16일 삼성의 상생경영 7대 실천방안 발표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상생협력 대책이 속속 발표됐다.
최근 잇따라 나온 대기업들의 상생협력 방안은 1차 협력사 뿐만 아니라 2·3차 협력사에 대한 배려와 이익배분 강화 및 성장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기업들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반면 중소협력사들은 거기에 합당한 이익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중소기업계와 정치권의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의식한 주요 대기업들은 납품단가 현실화를 비롯한 공정거래 강화와 대규모 자금 조성을 통한 협력사 유동성 공급 등의 자금지원 카드를 일제히 들고 나왔다. 삼성전자는 1조원에 달하는 '협력사 지원 펀드'를 조성하고, LG는 협력사에 연간 7천4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약속하는가 하면 현대기아차는 주요 원자재인 철판을 일괄적으로 사들여 협력사에 구매가격으로 공급하는 '사급제'의 대상을 1차 협력사에서 2·3차 협력사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포스코 역시 원가절감액을 협력사와 나누는 '베네핏 셰어링(수익공유)' 제도를 1차 협력업체에서 전체 협력사로 확대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또 협력업체에 대한 단순 자금 지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직·간접 연구개발비 지원, 녹색 신사업 공동 발굴, 인사와 노무, 영업 등의 경영역량 강화 프로그램 운영, 기술 인력이나 실험실, 계측장비, 원자재 무상 제공 등 중소 협력사와의 동반 성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부의 엄포(?)에 못이겨 마지 못해 하는 모양새로 출발했다는 오해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기업들은 정부 주도의 상생협력 모양새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이 느끼는 애로사항을 상시 파악하고 상호간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생을 실천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어느 한쪽만이 성공하거나 살아남는 독립적 존재가 아닌 '공동 운명체'라는 상생협력 문화 조성과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예로 일본 도요타는 2000~2003년에 30%의 원가절감을 추진하면서 나온 이익을 부품업체의 납품단가 인상 등으로 철저히 공유한 것은 물론, 90년대 장기불황기엔 부품주문을 줄이는 대신 부품업체와 기술개발을 통해 차세대 제품개발에 적극 앞장서 중소기업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 상생협력 성공사례는 우리 대기업들이 참고할 만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나홀로 살아남는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술경쟁력을 갖춘 협력 중소기업과의 강력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난공불락의 시장지배력을 확보한 해외 상생협력 성공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차별화 된 경쟁력을 갖춘 협력사를 확보하는 것이 곧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으로 기존에 거래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중소 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대·중소 상생협력', 곧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