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인천 22년


지난 1988년 7월 15일 첫 발을 내디딘 인천일보가 올해로 창간 22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인천은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하며 명실공히 국제도시로 급성장을 거듭했다.
 

   
▲ 천안함 침몰


이같은 성장과 희망의 소식뒤에는 대형 사고와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도 많았다. 그 모든 영광과 시련이 곧 인천일보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어느덧 스물두해를 맞아 청년기로 접어든 인천일보. 그간 지면을 채워온 각종 기사들중 지역에서 최대의 이슈가 됐던 기사들을 연도별로 발췌, 요약해 본다.

1988년 용유도~영종도 간 연륙교 개통
경기도 옹진군 용유면 용유도~영종면 삼목도를 잇는 연륙도로가 개통돼 섬 주민들의 생활이 크게 바뀌었다. 길이 4천340m 2차로의 연륙도로 건설엔 50억5천800만원의 예산이 투입돼 1984년 10월 착공 후 4년여 만에 완공했다.

1989년 인천항 기름 유출
가축사료 원료를 싣고 인천항 1부두에 입항항 5천300t급 파나마 선적 화물선에서 유출된 벙커C유와 폐유가 인천항 1~8부두 1.5km 구간 항만 내수면 중 안벽 쪽을 오염시켰다. 부두 인근에 2천100여 m의 오일 펜스를 설치하는 등 기름 제거 작업에만 20여 일이 걸렸다.

1990년 65년 만의 대홍수
인천·경기·서울지역에 사흘 간 최고 500mm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65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로 기록됐다. 인천에서만 건물 14채가 무너지고 3채는 일부분 무너지는 등 100여채가 침수되고 207가구 800여명의 이재민을 냈다.

1991년 인천지하철기획단 발족
인천지역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할 지하철 개통을 추진하기 위해 인천시에 인천지하철 기획단이 발족했다. 시는 이듬해 인천 지하철공사와 지하철 건설본부를 설립, 1993년 인천도시철도 1호선 공사에 본격 착수했다.

1992년 초고속선 등장
인천-백령도 항로를 운항하는 초고속 여객선 데모크라시호가 인천 앞바다에 등장했다. 시속 92km속력의 324t급 데모크라시 호는 인천-백령도 간 운항시간을 종전 12-13시간에서 3-4시간대로 단축시켰다.

1993년 부두직통관제 실시
부산항에 이어 인천항도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에 대한 부두직통과제가 실시됐다. 이제도는 하역과 동시에 화물을 통관시키는 제도로 인천항을 이용하는 인천·경기지역 무역업계의 물류비 절감에 기여했다.

1994년 북구청 세금 비리사건
인천시 북구청과 부천시 세무공무원들이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수십억 원의 취·등록세를 착복한 사건이 드러나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무 조사는 전국으로 확대됐고 최기선 당시 관선 인천시장은 책임을 지고 취임 1년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5년 인천직할시, 행정개편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다. 경기도 강화군 전역과 김포시 검단면, 옹진군 전역(대부분 제외)이 인천으로 편입돼 인천의 면적은 996.96km²로 크게 늘어났다.

1996년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피살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으로 지목됐던 안두희가 버스 운전기사 박모씨에 의해 피살됐다. 평소 백범을 존경했으며 백범 추모식 직후 살해를 계획했다고 밝힌 박씨는 이듬해 11월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도중 1998년 3월 특별 사면됐다.

1997년 인천방송 개국, 새 강화대교 개통
인천시민들의 염원에 힘입어 인천·경기서남부를 권역으로 인천 최초의 지상파 TV 인천방송 iTV가 개국했다. 인천 도심-강화를 한달음에 오갈 수 있는 새 강화대교(길이 780m·폭 19.5m)가 개통돼 강화-김포 간 교통정체를 일부 해소하게 됐다.

1998년 박찬호 메이저리그 경기 생중계
인천과 수도권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인천 방송 iTV가 메이저리그 중계계약을 맺고 LA다저스에 소속돼 있던 박찬호의 등판 경기 텔레비전 단독 생중계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iTV는 인천시민뿐 아니라 수도권 시청자들에게도 인기를 받는 지역 대표 지상파 방송으로서 지위를 굳혀갔다.

1999년 인천지하철 시대 개막, 인현동호프집 화재참사
공사 착공 6년만에 박촌-동막20.5km 구간을 남북으로 잇는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돼 인천도 본격적인 지하철시대를 열었다. 중구 인현동 지하 3층 건물 지하 노래방 수리공사도중 난 불이 2층 라이브 호프집과 3층 당구장으로 옮겨 붙어 10대 청소년 57명이 숨지는 대참사를 빚었다.

2000년 인천공항고속도로 개통, SK와이번스 창단
인천 국제공항 개항을 앞두고 인천공항-서울 방화대교간 40.2km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삼미 슈퍼스타즈(1982년), 청보 핀토스(1985년), 태평양 돌핀스(1988), 현대 유니콘스(1996) 등 인천을 거쳐 명멸해 간 팀들에 이어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가 창단됐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문학경기장 준공
'단국 이래 최대의 국토개발'이란 꼬리표가 달린 인천국제공항이 역사적인 개항식을 갖고 운영에 들어갔다. 남구 문학동에 국제 규격에 맞춘 문학경기장이 개장했으며 주경기장(지상 5층·지하 1층)은 국내 축구 경기장 중 4번째 규모로 5만256명을 수용하도록 지어졌다.

2002년 인천~중국 컨테이너 항로 개설 합의
인천과 중국은 10차 한중 해운 협의회를 통해 인천-칭다오, 인천-상하이 간 정기 컨테이너항로 개설에 합의했다. 인천항을 경유하는 컨테이너 항로 개설로 전국 물동량 40%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수도권 물류수출업체들에게 비용절감 효과를 안겨줬다.

2003년 3개 경제자유구역 지정
송도(53.4㎢), 청라(17.8㎢), 영종(138.3㎢) 등 3곳 209.5㎢이 경제자유 구역으로 지정됐다. 송도는 국제 비즈니스 중심도시, 청라는 화훼·위락·국제금융단지, 영종은 인천 국제공항과 연계된 항공물류, 관광·레저 단지로 육성이 추진되고 있다.

2004년 굴비 사건
안상수 인천시장이 한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현금 2억원이 든 굴비상자를 여동생을 통해 전달 받은 뒤 시 클린센터에 신고했지만 뇌물수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년 6개월 간의 공방 끝에 결국 2년 뒤 대법원이 무혐의 판결을 내리면서 안 시장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이 일단락됐다.

2005년 제16회 아시아 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최
제1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가 문학경기장에서 8월 31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9월 4일까지 펼쳐졌다. 1975년 서울에서 제2회 대회가 열린데 이어 한국에선 30년만에 인천에서 두 번째 대회가 열렸다.

2006년 안상수 시장 재선
5월 31일 치러진 민선 4기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안 시장은 물론 군수·구청장, 시의원 선거를 석권하며 개발 정책에 힘이 실렸다.

2007년 2014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공항철도 개통
서울(1986년)과 부산(2002년)에 이어 인천이 국내 3번째로 4월 아시아경기대회 유치에 성공,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앞서 3월 23일엔 인천공항-김포공항 37.6km구간을 달리는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됐다.

2008년 숭의종합운동장 역사속으로
1920년 문을 연 뒤 88년 동안 인천시민의 애환을 담아냈던 숭의종합운동장이 구도심 재개발에 따라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9년 인천세계도시축전 개막과 인천대교 개통
8월 7일부터 80일 간 송도국제도시에서 인천세계도시축전 화려하게 펼쳐졌다. 10월 인천공항-송도국제도시를 교량으로 연결하는 12.3km의 인천대교가 개통됐다.
 

   
▲ 인천대교 버스추락


2010년 천안함 침몰, 송영길 시장 취임, 인천대교 버스추락
3월 26일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로 인해 1천200t급 천안함이 침몰돼 46명의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돼 북한의 어뢰 발사로 인한 침몰로 규정짓고 UN 등 전 세계적으로 북한의 침략행위에 대한 규탄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UN안보리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북한의 침략행위에 대한 제재조치에 들어갔다.
6월 2일 전국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송영길 후보와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펼친 결과 송 후보가 민선5기 시장으로 당선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장과 10개 구·군의 자치단체장 선거 결과 민주당이 시장을 비롯한 6개 구에서 당선됐고 처음으로 민주노동당 후보가 2개의 구에서 구청장으로 당선됐으며 무소속 1개군, 한나라당 1개군에서 당선되는 등 집권당의 참패로 이어졌다.
7월 3일 인천대교 인근에서 승객 24명(운전자 포함)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가던 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10m 아래로 추락, 1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성웅기자 ksw1507@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