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구 교수의 강화이야기
   
 


혈구사는 혈구산 상봉 동쪽 골짜기 7부 능선쯤에 위치합니다. 절터의 전면 축대는 마니산 흥왕사지 석축처럼 지반 위에 큰 바위의 한 면을 다듬어서 쌓고 위로 올라 가면서 다시 한 면을 다듬은 할석으로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 높이가 3~4m이며 길이는 약 25m가량 됩니다. 본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는 축대에서 2m정도 안 쪽으로 한 면을 다듬은 할석으로 2, 3단 정도의 축대를 쌓았는데 전면 쪽에 드문드문 초석으로 보이는 납작한 큰 돌이 보입니다. 과거 조사에서 법당 터는 660여㎡(200여 평) 정도에 조성됐던 것 같이 보였습니다. 사역 경내 대웅전지의 전면부에서는 석탑이나 석등이 있었을법한 웅덩이 부근에서 석재 부재가 확인되기도 하였습니다. 혈구사 터에서는 또한 지금도 기와편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혈구사는 고려 고종 46년(1259)에 지어진 사찰입니다. 고종은 정족산 가궐을 지을 때 혈구사를 함께 지었습니다. 그 후 고종의 아들인 원종은 왕위를 계승한지 5년(1264) 째인 6월 한 여름날 이 절에 행차하여 대우주를 밝게 비추어 주는 대일여래를 모시고 기도하는 '대일왕도량'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또한 전등사 가궐이나 마니산 흥왕사 이궁 같이 도량이면서 왕이 머무는 이궁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혈구사는 고려가 강화로 천도했던 시기에 세워졌던 중요한 국찰이였읍니다.

원래의 혈구사 터는 지금의 선원면 선행리 시리미 마을 혈구산 동쪽 기슭에 위치했으며 여러 속암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혈구산 중턱이든 아래이든 정확한 위치와 사세의 흔적, 규모를 확인하기도 전에 산 아래 쪽에서는 벌써 무슨 종교시설이나 전원주택들이 들어섰습니다. 혈구사 뿐만 아니라 혈구산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 더 이상 망실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선문대학교 역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