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칼럼
지난 6일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2010 외교청서'를 확정 발표하면서 독도에 대한 도발을 또다시 감행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의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의 뜻을 밝히고 공식 외교문서인 구상서를 직접 전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그동안 말을 아껴오던 하토야마 총리마저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일체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발언했다. 더불어 최근엔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한 지질조사를 중단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면서 우리 정부에 정면 대응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여러 조치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독도 문제와 비슷한 판결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있었다. '페드라 브랑카' 사건이다.

'페드라 브랑카'는 싱가포르에서 남중국해로 드나드는 길목에 있는 무인도다. 총 면적이 1만㎡도 되지 않는 무인도를 놓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28년 동안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이 섬은 19세기 싱가포르 일대를 지배하던 영국의 관리 하에 있었고,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는 그 승계자인 싱가포르가 '실효적 지배'를 계속해 왔다.

분쟁이 시작된 건 1979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발간한 공식 지도에 이 섬을 자국 영토로 표시하면서부터였다. 싱가포르는 공식 항의와 함께 섬 주변에서 말레이시아 어선들의 조업 활동을 금지시켰다.

협상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양국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따르기로 합의했다. 싱가포르는 영국이 1847년부터 등대 공사를 시작함으로써 그때까지 무주지(無主地)였던 이 섬의 영유권이 처음 확립되었다고 주장했고, 말레이시아는 옛 문헌들을 제시하며 영국이 관할하기 이전부터 조호르 술탄(이슬람 군주)의 지배를 받아온 고유 영토란 주장을 폈다.

ICJ는 판결에서 역사적으로 말레이시아의 고유 영토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영유권은 실효 지배를 주장해 온 싱가포르에 있다고 판결했다. 결정적 이유는 말레이시아의 묵인이었다. 1953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서신을 보낸 이래 1979년까지 단 한 번도 싱가포르의 실효 지배에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토 분쟁에 대한 ICJ의 최근 판례들을 보면 실효 지배를 존중하는 추세가 강하다. 그렇다고 이를 독도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해 안심할 일은 아니다.

일본은 말레이시아와 달리 1952년의 '이승만 라인'선포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며 항의해 왔다. 더구나 분쟁의 핵심 쟁점이 구체화된 '결정적 기일' 이후(페드라 브랑카의 경우 1979년)에 취한 조치들은 영유권 판단에 효력이 없다는 게 ICJ의 판례이다. 또 '페드라 브랑카'사건은 다른 국가가 명시적인 영유권 표명을 할 때 영유권을 가진 국가가 대응하지 않으면 영토 주권이 이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 정부가 보여주었던 '조용한 외교'는 포기해야 한다. 물론 우리 정부는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라고 주장하지만 '조용한 외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묵인으로 오해되어 자칫하면 우리에게 불리해 질 수도 있다.

독도에 호텔을 짓고 해병대를 파견하자는 발상도 좋지만, 냉철한 자세로 국제법적 논리 확립과 사료 연구에 주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 아무리 일본이 ICJ에 의한 해결을 요구해도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지만, 국제 여론이 언제 어떻게 우리 등을 떠밀지 모른다.

따라서 '페드라 브랑카' 사건의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상현 국회의원 / 인천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