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558 )
필자가 본보에 근무했던 시절의 출근 코스는 '산곡동-십정동-가좌동-송현동-인현동-홍예문-중앙동-본사'였다. 아침마다 같은 거리를 다녔기 때문에 거리의 풍광이 지금도 머릿속에 필름처럼 훤히 담겨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인천제철 사옥 앞의 조각이었다. 원뿔과 삼각형이 교차된 기하학적인 품새가 제철소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오며가며 뭔가 모를 위안을 받았다. 조각이란 저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일러스트 노희성 화백의 귀향 전시회 뒤풀이 장소에서 좌중이 조각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작품이 인천 출신 조각가 김창곤 교수의 것임을 비로소 알게 돼 또 한번 감격하였다.

반면에 홍예문 입구 오른쪽 바위에 올라앉은 조각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였다. 시멘트로 만든 것 같은 데 칠이 허옇게 벗겨져 몇 년째 너덜거리고 있었다. 주변과 어울리지도 않는 데 자리 보존 30년이다.

홍예문의 조각만이 아니다. 인천의 도처에는 이런저런 조각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저건 아닌데… '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앵그르의 유화 '샘'의 형상을 그대로 베껴 모 빌딩 앞에 세운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가 하면 세상 눈 무서운 줄 모르고, 수십 년 전 이미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앞에 세운 주판알 차용 조각을 흉내 내 인천에 유사작을 버젓이 세운 작가도 있다. 구월동 CGV 앞 대로상의 소녀상은 팔뚝이 잘려나간 지 오래됐다는 소식이다. 이래저래 조각들이 도시의 품격을 오히려 깎아 내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