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경제
2009년은 삼성전자에게 매우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매출액 136.2조와 영업이익 10.9조를 기록해 이른 바 '100-10'을 초과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영업이익률 10%는 중소기업도 쉽지 않은 데 대기업의 실적으로는 경이적이다. 언론은 물론 경제 분석가들도 삼성전자의 실적과 경영전략에 찬사를 보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조차 일부에서 삼성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지금이 진짜 위기'라는 말과 함께. 필자는 그의 말이 지극히 옳다고 믿는다.
몇 개월 전 일이다. 거실에 있던 삼성전자 제품인 TV의 화면이 자주 끊기더니 결국 먹통이 되었다. 결국 고장난 불량 전자 패널을 통째로 바꾸는 데 거금을 지출해야 했다. 구입한 지 3년도 안 되는 TV를 수리하는 데 몇 십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어떤 이유를 동원해도 비상식적이다. 이런 고장이 흔히 발생해 본사에 건의를 해도 아직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수리기사의 동정조차도 전혀 고맙지 않았다.
아내는 최근에 새 세탁기를 들였다. 세탁기도 앞의 TV와 같은 시기에 구입했기 때문에 3년 만에 세탁기를 교체한 셈이다. 세탁기 역시 고장이 나서 애프터서비스를 의뢰했더니 수리비만 10만 원이란다. 아침 저녁으로 세 아이가 벗어 놓는 빨래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결국 수리를 포기했다. 기분 나쁜 구매 경험을 잊으려는 뜻인지는 몰라도 아내가 새로 구입한 세탁기는 삼성전자가 아닌 경쟁 회사의 제품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 역시 삼성전자 제품인 데 얼마 전 하자로 공개 리콜을 당한 바로 그 제품이다. 아내는 번거로운 리콜이 엄두가 안나 차일피일 그냥 미루고 있다.
사실 냉장고를 비우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가는 주부들만이 안다. 그냥 다른 전자제품처럼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자동차 몰고 가서 정비소에 맡기는 것과 다르다. 냉장고는 비우기도 어렵고 움직이기도 어렵다. 삼성냉장고가 문제 없이 1~2년만 더 버텨주면 핑계김에 다른 제품을 구입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결국 문제가 발생할 지도 모르는 시한폭탄을 주방에 두고 살고 있다.
요즘 필자는 이동통신 단말기(삼성전자 애니콜)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멀쩡하게 충전되었던 단말기가 갑자기 거의 방전 상태로 변하거나 충전 자체가 안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댑터를 살살 달래가며 사용하다가 한 번 바꾸었지만 그래도 영 시원치 않다. 구입처에 갔더니 차로 30분 거리의 대리점으로 가야 한단다. 물론 삼성전자가 어댑터까지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댑터는 단말기의 일부이고 엄연히 삼성이라는 로고가 박혀져 있다. 요즘은 아내의 충전기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 노트북 컴퓨터 구입을 고민하다가 결국 휴렛팩커드(HP)사 제품을 선택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일련의 삼성전자 제품들을 보면서 일종의 불길함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자만하다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은 대부분의 일등기업들이 빠지는 대표적인 함정이다. 남다른 성공한 경험이 있을 때 특히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토요타자동차의 급발진 관련 사례는 삼성전자의 미래 경험이다. 스티브 잡스는 틈만 나면 고객의 질문에 아이폰으로 직접 메일을 보낸다. 최근 애플의 약진에는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5년에 불량 휴대폰 15만 대를 불태운 이후 지금의 우량기업으로 변모했다.
지금 이건희 회장이 첫 번째 할 일은 고객의 불평에 귀를 귀울이는 일이다. 반드시 모든 불량제품, 아니 삼성전자 전체를 불태워야 한다.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의 소비자가 다른 회사 제품으로 마음을 바꾸기 전에 말이다.



/이종일 남서울대 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