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40 김재열 인천예총 회장
소식지 발행편수 늘리고 예총 70년사 발간 의지
4천여 회원 화합 강화 원로작가 작품 보존 구상


인천지역 4천여 문화예술인들을 대표하는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시회장(이하 인천예총 회장) 자리에 새 사람이 앉았다. 지난 19일 치러진 인천예총 회장 선거에서 김재열 화백이 당선, 제 10대 회장에 올랐다.
4년전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김 신임 회장이기에 이번 경선 승리는 더욱 의미가 특별하다. 정치판과는 한참과 거리가 먼 문화예술계 선거에서 연달아 자신을 던진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인천문화예술 사랑에 있다. 온 몸을 다 바쳐 인천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해야하는 자리가 바로 인천예총 회장이기 때문이다.
구상이 많다. 실행에 옮기기엔 임기 4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수봉공원 인천문화회관 예총 집무실로 올라가는 첫 발걸음이 그래서 더 바쁘다.

#. 예총 위상 알리기부터
"예총이야말로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단체입니다.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면서 예총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다시 함정을 출항시키기 위해 전 집행부로부터 업무를 인수인계받는 마음이 급하다.
지난 23일 예총 사무실에서 만난 신임 회장은 예총 위상세우기부터 이야기를 푼다. 선거 공약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서 출발하려한다고 말한다.
"우리들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지요. 홍보는 남의 일로 취급했습니다. 늘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려 하면서도 지난 소식을 묶는 잡지를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것도 겨우 1년에 한번 정도였습니다." 예총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인천 아트 인' 이야기다.
4천여 회원들의 예술 활동이다. 질은 차치하고 양이야말로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조차 없다. 1년에 겨우 한번 담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만이다. 해서, 최소 계간지로 전환하려 한다. 사실 월간지로 가고 마음이 굴뚝 같다. 일단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자료를 보관하고 정리하는 일도 소홀했습니다. 결과물이 담긴 도록마저도 대부분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값진 흔적들이 지워지고 있는 셈이지요."
'인천예총 70년사'를 발간하겠다고 강조한다. 지난 1993년 50년사를 낸 후 그 누구도 챙기지 않았다. 잊혀지기 전에 살려내야 한다.
"예술은 기록입니다. 임기중 발간을 하지 못하더라도 팀을 구성, 기획에 나설 겁니다."

#. 화합하는 단체
수장으로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회원간 화합이다.
"장르가 다른 9개 협회가 지회장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탄탄하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협회가 예총이라는 울타리안에 함께 있다고 실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제게 맡겨진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찾아가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강조한다. 회장으로서 앞장서 달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한발 더해 한데 어우러져 판을 벌일 계획이다. "자주 얼굴을 맞대야 내 식구가 됩니다."
원로 예술인들을 모시는 일이야말로 더이상 지나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장르마다 인천 예술을 일으겨 세우고 이끌어 온 어른들이다.
"예컨데 미술의 경우 건강이 안좋으신 원로작가들이 많습니다. 인천을 대표하는 작가로 수십년동안 활동해오신 분들이지요. 그 분들의 작품을 제대로 관리해야 함에도 방치한 채로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이 시급한 이유중 하나가 거기에 있죠. 작품을 한데 모아 보존해야 합니다."
원로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꼭 만들 겁니다."

#. 화가와 회장 사이
화가로서 개인보다는 예총 회장이 우선이다. 붓을 잡을 시간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잠을 더 줄여야 한다.
그림에 전념할 수 없는 부분이 아쉽지 않느냐는 물음에 답 대신 엽서 한장을 건낸다.
'한·중·일 수채화 3인전, 4월17일~25일, 마에바시(前橋)시 아쿠쯔(阿久津) 화랑'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 마에바시에 있는 화랑으로부터 기획전 참가 제의를 받았다. 한·중·일 대표 작가 3인을 초대하는 자리다. 이미 일본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이어온 그다. 흔쾌히 수락했다. 몇달전에 성사된 일이다.
"화가의 자리로 돌아가 그림을 들고 가야지요. 이번 전시를 계기로 12월엔 인천에서 다시 한번 한·중·일 수채화전을 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계획한 일들입니다." 그림이야기를 하는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김 회장의 고향은 인천이 아니다. 20대에 이 도시에 와 직장을 만들고 가정을 만들고 화가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어언 40년이다. 그 세월을 지나면서 인천 태생보다 더 진한 인천인이 됐다.
인천 정서가 담긴 소래포구를 시작으로 개항장 일대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인천모습을 되살려온 그다. '인천 근대건축 풍경 기행전'이라는 타이틀로 여러차례 개인전을 펼쳐왔다.
"중·고 시절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그림을 그리며 커온 세대인 '청관파'의 정서를 충분히 공감하며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샌가 인천사람이 됐습니다. 가슴으로 느끼며 살고 있기에 예총 회장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글=김경수기자 kks@itimes.co.kr
/사진=박영권기자 (블로그)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