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순은 그 여의사 앞에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여의사는 검진대 위에 성복순을 눕혀놓고 자궁과 질 검사를 하더니 달거리를 언제 했느냐고 물었다. 성복순은 모내기 전투가 막 시작될 초봄에 한 번 하고 지금껏 한번도 달거리를 한 기억이 없다고 대답했다.

 여의사는 검진대를 내려와 속옷을 입으라고 말한 뒤 임신 넉 달째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이곳 관리소에서는 남포(다이너마이트)를 발파하여 야산에서 떡장 같은 화강암덩어리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남녀 죄수들이 달라붙어 일일이 노미(정)질을 해서 남자들의 경우는 20kg짜리 다듬은 돌 10개를 생산해야 하고, 여자의 경우는 10kg짜리 다듬은 돌 10개를 생산해야 하루 개인작업량을 완수하게 되므로 임신은 절대금물이라고 말했다.

 사회에서 수태가 되어 들어온 여죄수들도 6개월 미만의 단기형을 선고받고 들어온 특별한 경우 외에는 대부분 중절수술을 한다고 했다. 그렇잖으면 임신한 몸으로 노미질을 해

서 지정된 1일 작업시간 안에 10kg짜리 다듬은 돌 10개를 생산해 개인할당량을 완수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함께 생활하는 조직성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 임신한 여성은 따돌림을 받게 되고, 조직생활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할당량을 마칠 때까지 교화노동을 시키므로 교화노동기간은 자연적으로 두서너 달씩 늘어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임산부들은 쉴 시간에도 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달 밝은 밤에도 나와서 노미질을 하면서 작업을 강행하다 결국에는 병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뱃속에 든 아기는 아기대로 사산하고 임산부는 임산부대로 건강이 나빠져 둘 다 죽고 만다고 했다.

 죽을 시기가 임박해서 자신이 욕심을 부렸다는 것을 깨달은 임산부가 뒤늦게 달려와서 중절수술을 해달라고 매달려도 그때는 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회에 있는 도 병원이나 군 병원처럼 수술기구가 잘 갖춰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첫째 중절수술 후 투여해야 할 주사약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에서도 죄수들에게는 그런 용도로 쓰이는 고가 주사약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는 교화노동을 마치고 두 발로 관리소 정문을 걸어나가고 싶으면 하루속히 중절수술을 하라고 권했다. 살아서 두 발로 걸어나갈 수만 있다면 임신은 사회에 나가서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성복순의 경우는 지금 임신 넉 달째라 이쪽저쪽 살피며 시간을 두고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시바삐 결정을 내려 뱃속의 아기가 더 크기 전에 중절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며 의사는 단도직입적으로 성복순의 의향을 물었다.

 잠잠히 듣다 보니 의사는 진심으로 자신의 앞날을 위해 덕담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와서 이런 언니 같은 의사를 만난 것도 그녀에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