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높은 사람들한테 잘못 보여 덤터기라도 덮어쓰면 6개월만에 나가기로 되어 있는 교화노동이 1년 이상 연장될 수도 있다는 보위원의 말이 은근히 사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

 성복순은 무사히 교화노동을 끝마치고 이 관리소를 자기 발로 걸어나가는 날을 그려보며 잠시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부비서실로 들어갔던 보위원이 뛰어나왔다. 줄을 서 있던 14명의 수감자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고개를 들고 전방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땅딸막한 남자가 레닌모를 쓴 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보위원은 그 땅딸막한 남자가 신참 죄수들 곁으로 다가오자 『이렬횡대로 선 채로 나란히 차려!』 하고 크게 외치더니 『부비서 동지를 향해 경례』 하고 인사를 시켰다.

 부비서는 절도 받지 않은 채 삐딱하게 쓰고 나온 레닌모를 앞으로 푹 눌러쓰며 14명의 신참 죄수들을 말없이 한번 훑어봤다. 그리고는 곁에 서 있는 보위원을 향해 낮게 한 마디 했다.

 『날래 옷부터 갈아 입혀 로동중대에 편입시키라우.』

 보위원은 곧장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부비서는 뒷짐을 지고 서너 걸음 걸어가다가는 다시 다가와 맨 앞줄 세 번째 서 있는 여죄수와 성복순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더니 돌아서서 그의 사무실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자전거 옆에 서서 부비서의 꽁무니만 지켜보고 있던 보위원은 부비서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14명의 죄수들을 데리고 관리소 사무실 옆 공터 쪽으로 데리고 갔다.

 얼마 후 관리사무실 쪽에서 허름한 죄수복에다 수인번호를 가슴에 단 죄수 두 명이 나왔다. 그들은 신참 죄수들을 통나무 위에 걸터앉혀 놓고 남녀 구별 없이 머리부터 삭발시켰다. 젊은 보위원은 그들 곁에서 담배를 피우며 신참 죄수들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누구든지 삭발에 반항하면 당장 짓밟아 놓겠다는 표정이었다.

 성복순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이 낯선 남자가 들고 나온 바리캉(bariquant)에 의해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잘려나가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 머리가 어떤 머리인데 여기 와서 이렇게 돼지털 뽑히듯이 무참하게 잘려나간단 말인가?

 어디 대놓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것이 더욱 가슴 아팠다. 그런 심정은 그녀와 같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여죄수들 모두가 같은 심정일 것이었다. 그래도 여죄수들은 보위원한테 짐승처럼 짓밟히고 걷어차이기 싫어 말 한마디 않고 구슬 같은 눈물만 소리 없이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삭발이 다 끝날 때쯤 관리소 사무실 안에서 의사인 듯한 40대 여자가 나와 여죄수 5명을 몽땅 데리고 의무실로 갔다. 그 여자는 여죄수 5명에게 옷을 벗으라고 해 놓고는 한 사람씩 안으로 불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