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31 - 재미작가 이상남
경기도미술관 초대형 벽화 작업

한국·미국 오가며 2년만에 완성

"건축물도 회화·예술 될 수 있어"

작품 20여점 연결 '대작' 준비중

경기도미술관 로비 벽이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변신했다. 가로 46m 세로 5.5m에 달하는 그야말로 초대형 벽화다. 누가 이런 대형사고(?)를 친 것일까. 그 상상력과 용기가 대단하다. 주인공은 바로 재미작가 이상남. "미술관은 그저 전시품은 담는 건축물에 불과했습니다. 경기도미술관 입구 벽면을 보는 순간 이거 다 싶었어요. 건축물도 회회가 될 수 있고 예술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작품을 구상하게 됐죠." 그에겐 벽도 아주 특별한 캔버스였다. 이것의 바로 이상남의 파워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말 되게 하는 것. 건축과 회화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경기도미술관에 설치된 대형벽화가 지난 7일 일반에 공개된 가운데 오픈닝 전 이상남 작가를 만나 독특한 작품 이야기와 뉴욕 라이프를 들어봤다.



#. 풍경의 알고리듬
그는 지난 2008년 봄, 유독 넓고 높은 경기도미술관 벽면에 반해 버렸다. 경기도미술관측에 초대형 벽화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작품 스케일 만큼이나 예산부분에 있어 고민이 컸다.
이상남 작가의 기막힌 소식을 들은 커피빈코리아의 박상배 대표가 작품 제작에 후원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초대형 프로젝트 제작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김홍희 관장도 미술관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 작품을 소장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그가 2년 동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만든 초대형 작품이 경기도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이다.
'풍경의 알고리듬(Landscapic Algorithm)'은 이상남이 2008년부터 시작한 최신 연작이다. 매끄러운 바탕 위에 원과 직선을 변형한 각종 기하학적 형상들이 경쾌하게 배치돼 있다.
마치 컴퓨터 작업을 통해 만든 것처럼 보인다. 벽화는 실은 스테인리스스틸 패널로 돼 있다.
작가는 그림의 표면을 최상의 매끄러운 완성단계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50회 이상을 칠하고 갈아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야말로 죽노동 중에 죽노동이었다.
문제는 크기가 각기 다른 대형 패널 66개를 하나로 설치하는 것.
"벽에다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패널 위에 그림을 그린 뒤 퍼즐처럼 맞춰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단 1㎜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되는 시공작업은 3주에 걸쳐 진행됐는데 그야말로 살인적인 작업이었어요. 1㎜의 차이가 작품 전체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었습니다. 1㎜와의 전쟁이었죠 ."
이번 작품은 빛에 따라, 조명에 따라 작품 보는 맛이 제각각이다. 또 날씨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작품이 주는 변화무쌍함은 무궁무진하다.
작가노트에서 밝한 작가의 변은 이렇다.
"나의 그림은 자연(自然)의 물상(物象)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인간이 창조한 형상들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나 자연과 인공, 무위와 유위, 이러한 궁극적 이원성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직선은 죽음이다. 원은 삶이다. 모든 시간은 직선과 원의 복합이다. 나의 생명은 항상 직선의 죽음, 원의 삶을 포괄한다. 그리고 나의 예술은 직선과 원이 무화(無化)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영원한 깨임이요, 벗음이다."

#. 미국 뉴요커, 이상남
이상남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72년 데뷔 후 다수의 전시회를 거치며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1981년 도미, 뉴욕으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 보다 긴 세월을 뉴욕에서 살았다. 그에게 뉴욕은 어떤 곳일까.
"미국이 뉴욕은 아닙니다. 뉴욕은 또 다른 섬이지요. 세계적인 용광로인 동시에 정열의 도시인 것입니다. 버려진 휴지도 찌그러진 깡통도 예술이 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뉴욕입니다. 뉴욕의 익명성과 무명성을 즐기면서 산 지가 벌써 28년이군요."
그는 뉴욕을 '스승'이라고 말한다. 뉴욕에서 그는 28년 동안 소박한 의미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했다.
"30~40대, 50대를 돌아보면 뉴욕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그림 그린 것 이외에 다른 추억이 없어요. 소위 말하는 입학, 졸업, 취직, 결혼 등 한국식 매뉴얼대로는 살지 못했어요. 오직 작품만 생각하고 작품만 그리워하며 살아왔죠."
오로지 그리기 위해 사는 한국 남자에게 뉴욕 미술계는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서울 청담동 PMK 트리니트 갤러리에서 '풍경의 알고리듬 전'을 열고 신작 70여점을 전시했다. 1997년 이후 11년만의 국내 개인전이었다.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이례적으로 세계 3대 미술 전문지 '아트인 아메리카', '아트 포럼', '플래쉬 아트'에서 동시에 호평을 싣었다.
기하학적인 그의 작품에 대해 '아트 포럼'은 "이미지를 찾아내서 그로부터 시각적인 정보를 단순화 한 다음 이를 캔버스에 옮긴다는 점"에서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초기 작품과 비교했다.
예술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뉴욕이지만 관객과 미술 평단으로 정말 인정받기 힘든 곳이 바로 뉴욕. 그는 뉴욕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것은 작가 이상남이 뉴욕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아 현대 미술의 역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한국인 이상남의 도전과 꿈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끝이 없어 보인다.
올해 완공을 목표로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LIG 경남 사천 대진리 일대 신축 중인 연수원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유리 통로벽에 40m 작품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작품 20여점을 연결해 선보일 예정인데 단일 작가 작품으론 국내 최대 규모다.
벌써부터 국내외 미술계의 큰 이슈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 국정교과서 중학교 미술 교과서 2010년판에 그의 작품이 실리게 된 것.
"한국은 내 작품 세계의 원천입니다. 한국인이라는 게 장점으로 작용하지요. 한국에서 진행되는 여러 대형 프로젝트의 경험과 노하우가 언젠가 뉴욕 무대에서 커다른 결실을 맺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경기도미술관 대형 벽화도 한국이었기에 가능한 작품이었지요."
현대 미술의 심장이며 메카인 미국 뉴욕에서 한국인으로 당당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 이상남 작가. 그의 도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오로지 희망이 있을 뿐이다.
작가 이상남을 보면서 현대 미술의 초석을 다진, 시대를 초월한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떠오르는 것 무슨 이유에서 일까.

/강현숙기자 blog.itimes.co.kr/kang7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