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묘는 중국 역대 봉건 황제들이 태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산의 옛 이름이 대산(岱山)이어서 대종(岱宗) 태산묘(泰山廟)라고 부른다. 또한 태산이 중국의 오악(中嶽-嵩山, 南嶽-衡山, 東嶽-泰山, 西嶽-華山, 北嶽-恒山) 중에 동악(東嶽)이라 칭하기 때문에 동악묘, 태악묘(泰嶽廟)라고도 한다.

 대묘는 태안시 성구(城區) 동북편에 위치하고 면적 9만6천3백22㎡나 되는 당나라이래 사사(祠祀) 건축물 중에는 최고의 표준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남북종축선(南北從軸線)으로 되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건물이 양측으로 대칭되게 확산·구성된 형식이다.

 건축규모는 거대하고 근엄하게 조성됐으며 전당(殿堂)들은 높아서 멀리서도 보인다.

 정원은 동서 대칭으로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다. 여러 번에 걸친 전란으로 화재를 당하였으나 지금의 건축물은 명·청 시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다만 건축의 풍모는 원형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대묘는 사방이 모두 높은 성벽으로 되어 있고 사면에 모두 8개의 성문이 있다. 남향으로 5개의 문이 있는데 그 중 중심이 정양문(正陽門)이고, 양측으로 액문(掖門)이 하나씩 있으며 동서로 앙고문(仰高門), 견대문(見大門)이 버티고 있다.

 동쪽으로 난 문이 동화문(東華門) 또는 청양문(靑陽門)이라고 하며 서쪽으로 난 것이 서화문(西華門) 또는 소경문(素景門)이며 북으로 난 것이 후재문(厚載門)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대묘후문이라고 한다. 건축물은 대묘남문의 문호(門戶)건축인 요참정(遙參亭)에서부터 대묘방(岱廟坊), 정양문, 배천문(配天門), 인안문(仁安門) 천황전(天턮殿), 후재문으로 남북 중축선(中軸線)이 높여져 있다.

 요참정(遙參亭)은 초참정(草參亭)이라고도 하는데 대묘의 문호건축이다. 대왕이나 왕공 대신들이 태산에 와서 태산신에 제사 지내기 위해서는 먼저 이곳에서 참배하고 그후에 재능인들이 대묘에서 제사대전을 거행하게 된다. 요참전에는 요요참배(遙遙參拜) 또는 초초참배(草草參拜)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은 하늘 높이 아득한 참배 또는 많은 사람이 와서 참배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대묘방(岱廟坊)이 정양문을 마주 보며 굳게 버티고 서 있다. 한국에는 이에 해당하는 건축이 없다.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성격이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방은 패문(牌門) 또는 기둥이 네 개이고 지붕이 있는 것을 패루(牌樓)라고 하는데 건축양식이 전혀 다르다. 방은 안에 있는 건물의 내용과 상징성을 동시에 갖기 때문이다. 본래 산동의 석방(石坊)은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유명하다. 그러나 대묘의 패문은 용이 구름과 돌기둥에 조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양과 균형이 조화로우며 거대하고 웅장하다. 많은 방을 보아왔지만 이만한 것은 실물을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것은 강희 11년(1692)에 산동포정사(山東布政使)인 시천예(施天裔)가 만든 것으로 높이가 12m이며 폭이 9.8m나 된다. 석방 앞 뒤 대련이 조각되어 있는데 남면에는 시천예가 짓고 쓴 글이 있다.

 

 峻極於天贊化쯜元生萬物 (준극어천찬화체원생만물)

 帝出乎震, 赫聲濯靈鎭東方(제출호진혁성탁영진동방)

 

 지극한 하늘이 원기를 주어 만물이 태어나고

 제왕이 동쪽에서 출현하니

 왕성한 소리의 빛나는 신령은

 동방을 평화롭게 한다.

 

 반대편에는 순무병부시랑(巡撫兵部侍郞) 조상성(趙祥星)의 글과 글씨가 있다.

 

 爲衆岳之統宗 (위중악지통종)

 萬國具瞻 (만국구첨)

 巍巍 乎德何可尙 (외외호덕하가상)

 첋群靈之總攝 (삼군영지총섭)

 九州待命蕩蕩乎功孰與京 (구두대명탕탕호공숙여경)

 

 태산은 높은 산중에 으뜸이어서

 만국이 우러러본다

 크고 높은 덕은 얼마나 가상한가

 모든 신령과 손잡고 총괄하여

 나라 전체가 명을 기다리니

 대단한 공을 누구와 함께 빛낼까?

 

 비할 데 없는 석조예술품과 이에 걸맞은 내용의 문장들이 나의 넋을 패문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정양문은 대묘의 정문(正門)으로서 지붕은 황색 유리기와로 덮여있고 처마는 채색되어 아름다우며 높이가 20m인데 천황전보다 높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이곳에 대묘(岱廟)라는 액판이 높고 크게 걸려있다.

 중국의 큰 건물의 문이라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 크고 성벽으로서의 기능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산해관이나 함곡관, 천안문을 가본 사람을 알리라. 관이란 문은 문인데 여는 문이 아니라 담과 함께 막는 장벽으로서의 뜻이 더 강하다는 것을.

 정양문에서 북쪽으로 가면 배천문이 나온다. 건륭황제 때에 건축된 것이다. 덕배천지(德配天地), 배천작진(配天作鎭)에서 배천문이라는 뜻을 취했는데 「덕이 천지와 함께 한다, 하늘과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문 앞에 명나라 때 주조된 구리사자 한 쌍이 앞발을 세우고 앉은 모습은 늠름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동서 양쪽 대칭으로 서 있는 비석은 볼만하다. 동비(東碑)는 송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선화중수태악묘기(宣和重修泰嶽廟記)로서 높이가 9.25m로 거대하다. 만대천앙(萬代天仰) 즉 만대를 우러러본다는 내용의 네 글자가 힘있게 새겨져 있다.

 서비(西碑)는 대송동악천제인성제비(大宋東嶽天帝仁聖帝碑)로서 높이가 8.2m로 역시 송나라 때 세워진 것으로 오악독종(五嶽獨宗)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악 중에 오직 태산이 으뜸이라는 뜻이리라. 대묘에는 이 두 비가 유명하여 대묘양대풍비(垈廟兩大豊碑)라고 말한다.

 인안문은 배천문 뒤에 있는데 건축면적과 건축형식은 배천문과 동일하다. 역시 앞에는 명나라 때 주조된 사자 한 쌍이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다. 인안문은 「以仁治天下 天下則安」에서 얻어진 이름인데 「어짐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좀더 가면 태호석(太湖石)이 9개나 되는 돌로 만든 란지(欄池)가 나오고 소로대(小露臺), 대로대(大露臺)가 차례로 멋지게 이어지는데 대로대 양쪽으로 건륭황제가 대묘를 찾을 때 쓴 시와 글이 있는 어비정(御碑亭)이 있다.

 대묘대 위에 북쪽으로 대묘의 중심건물인 천황전이 나온다. 지붕은 황색 유리기와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23.3m이고 너비가 43.67m 세로의 폭이 17.18m가 돼 높고 웅대하고 찬란하다. 북경 자금성의 태화전(太和殿), 공묘의 대성전(大成殿)과 함께 중국의 삼대건축물로 자랑하고 있다. 건물 안 정면에는 이 근래 조소로 된 동악태산지신(東嶽泰山之神)이 모셔져 있고, 위에는 강희황제의 친필인 대덕일생(大德日生)과 건륭황제의 친필인 배천작진(配天作鎭)의 어서가 큰 액자로 걸려 있다. 황제가 하사한 구리로 만든 향로, 향통 등 여러 가지 물건이 있으며 특히 명나라 때에 만든 보경(寶鏡)이 볼만하다.

 천황전 내의 북동서 삼면 벽에 천연색으로 그려진 거대한 벽화는 대단하다. 동악대제계필회란도(東嶽大帝啓킞回?圖)는 이름도 길고 뜻이 생경하다 동악대제가 마차를 타고 각처를 순무하고 돌아오면서 호위 사열 받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벽화에는 대제를 중심으로 많은 인물을 개성적으로 그리고 사이사이에 산천, 수목, 누각이 들어가 구성이 광대하고 생동감이 치밀하다. 송나라 때의 그림이지만 채색이 무게가 있으면서도 빛나고 밝다.

 높이가 3.3m이고 길이가 62m이니 얼마나 크고 광대한지는 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중국에는 이름난 옛 벽화가 적지 않으나 도교(道敎)적인 내용을 담은 거대한 벽화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대묘 벽화는 태산신령을 칭송하는 형식을 빌려서 제왕의 봉선의식을 사실적으로 옮긴 거폭의 진품이라고 생각된다.

 이름 있는 건물에는 수령이 오래 된 나무가 있는 것이 언제나 자랑이다. 역시 이곳에도 한 무제가 식수했다는 한백(漢柏)이라는 잎이 적은 고목이 있는데 용틀임을 한 생김새가 천년의 세월을 입증하는 것 같다. 명필이며 화가인 유해속(劉海粟)의 친필로 한백이라고 했는데 퍽 인상적이다.

 자금성은 웅대하고 거칠면서도 항시 닫혀있는 궁전이다. 힘들여 세공한 조각은 있어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볼 수 없는 곳이며 물이 없어 건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대묘는 사당이면서도 사람이 살 수 있고 화원이 있고 큰 나무들이 숨을 쉬고 멋도 부린다. 연못도 있으며 옛 선비들의 글과 비, 각이 뜻과 함께 예스럽게 빛을 낸다.

 대묘의 후문인 후재문(厚載門)을 벗어나 몇 가지 더 볼 것이 있었으나 문화충격을 떨구어 버리고 싶어 천천히 걸어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복궁, 비원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금성, 대묘보다 좋게만 생각되는 것은 웬일일까?

 자연친화적인 멋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쉬면서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는 곳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