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원의 훈시는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관리소 정문을 두 발로 걸어 나가고 싶으면 자기의 말을 똑똑히 듣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위원들의 구둣발과 몽둥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끝마다 강조했다.

 수감자들은 보위원의 훈시가 끝나자 눈빛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함경남도 15호관리소(남쪽에서는 통상 요덕 정치범수용소라 부르고 있다)나 함경북도 25호관리소(청진 정치범수용소)로 이동될까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보위원은 수감자들의 눈동자에서 긴장감이 흘러내리고 굼뜬 행동들이 빠릿빠릿해지자 그제서야 만족할 만큼 규율이 잡혔다고 생각되는지 2열 종대로 줄을 서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수감자 14명은 인솔 나온 보위원을 따라 1시간 정도 관리소(이곳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불렀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복순은 그때 동림군 철산리 화강암채석장은 큰 산 두 개를 가운데 두고 외부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관리소 주위를 철조망으로 빙 둘러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관리소 안쪽으로 굽은 2.5미터 높이의 기역자(ㄱ) 기둥에다 사람들이나 개 돼지 같은 짐승들이 내왕하지 못하게 철조망을 치고, 육안으로 철조망 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나 짐승을 지켜볼 수 있게끔 일정한 거리마다 분초(分哨) 망루와 초소(哨所)를 설치해 무장한 경비병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망루에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성복순은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간이 콩알만해지는 듯했다. 그녀는 그런 것들을 보지 않으려고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까 양지 바른 산비탈에 오두막집이 두 서너채씩 모여있는 수감자 주거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오두막집들을 지나 또 한참을 계곡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허름한 창고와 산에서 채석한 돌을 싣고 와서 쌓아놓는 채석집하장이 나타났다. 군데군데 쌓여있는 왕릉 같은 돌무더기를 지나 평원지대로 들어서니까 희끗희끗한 벼이삭이 막 피어오르고 있는 논벌지대가 나타났다.

 논벌지대에는 남루한 옷에다 머리를 빡빡 깎은 남자 수감자들이 일렬횡대로 서서 벼논 고랑을 타고 다니며 피살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성복순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 동림군 철산리 화강암채석장은 죄수들이 손수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관리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논벌지대를 지나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까 산비탈 남새밭에는 김장용인 듯한 알배기 배추와 동치미용 무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퍼런 무청 밑으로 허옇게 허리를 드러내놓고 있는 김장용 무를 보니까 얼른 달려가 한 뿌리를 뽑아 이빨로 껍질을 벗긴 뒤 달콤하고 물기 많은 윗부분을 와싹와싹 씹어먹고 싶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침이 꼬르르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