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육군회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숙소를 나와 정동준 계장 집에서 하숙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되자 그는 정동준 계장의 주선으로 방배동에 있는 상문고등학교 3학년 5반에 편입해 대학입학예비고사 준비를 했다.

 이 무렵 강영실 동무와 성복순 동무는 인민군 2군단 3사단 보위부 구류장에서 풀려 나와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도 안전국으로 이감되었다. 도 안전국 구류장으로 이감된 날로부터 두 사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권(公民權)을 박탈당했다. 이와 동시에 당에서도 출당되었고, 공화국 사회에서 노동당원으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그들 사회의 우월적 기본권리와 생활의 편의마저 잃은 채 그들이 살았던 금천군으로 내려가 공개재판을 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인민군 2군단 예하에 있는 3사단 보위부에서 6하 원칙에 의거,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조사해 황해북도 안전국으로 이감시킨 국가물자 횡령범들이었다. 그래서 도 안전국 예심원들의 독자적인 수사는 생략되었다. 그들이 3사단 보위원들한테 진술한 내용을 재판장 앞에서 인정하고, 재판장으로부터 형량만 선고받으면 바로 교화소로 이감되어 실형을 살도록 되어 있었다.

 재판은 금천군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물러가고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회관 앞마당에는 각 동 인민반장과 리당 비서의 권유에 못 이겨 불려나온 오백여 명의 금천군 관내 인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문화회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다랗게 줄을 서 있는 인민들 속에는 월암리 5반 인민반장 정 아바이도 서 있었고, 평소 두 피고인과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살던 젊은 순직자 안해들도 끼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금천장마당에서 매대를 맞대고 장사를 하던 6호매대 리영순 동무와 8호매대 정순덕 동무, 또 마주보는 앞줄 5호매대 박미정 동무와 6호매대 석미란 동무도 나와 있었다.

 얼마 후 문화회관 앞마당에 줄 서 있던 군민들은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선풍기 한 대 매달려 있지 않은 군민회관 안은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초가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도 후텁지근했다. 실내의 좌석이 꽉 들어차자 도 안전국에서 내려온 안전원이 나와 재판은 오전 10시에 열린다고 선전하며 떠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도 좌석에 앉아 있는 군민들은 무료한 시간을 때울 듯 옆 사람과 소곤소곤 담소하며 재판관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판장에 들어가기 전 강영실 동무는 도 안전국에서 내려온 안전원들에게 친정 아버지를 불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안전원들은 냉정하게 그녀의 요구를 묵살했다. 애원하다시피 간청해도 강영실 동무의 요구가 묵살되자 성복순 동무는 모든 것을 단념한 듯 아예 아무런 요구도 않은 채 묵묵히 재판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오전 9시55분이 되자 도 안전국에서 내려온 계호원들을 따라 재판정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