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28 서예가 박혁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씨를 추구하는 서예가 글빛 박혁남 선생이다. 전통적인 한글서예에 기반을 두되, 독창적인 조형미를 끌어내는데 누구보다도 앞서 달려가고 있는 서예가다.

그의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큰 울림이 있다. 다름아닌 생각을 본(本)으로 작품을 풀어내기 때문이다. 섭렵하고 있는 폭이 넓다. 서예는 물론이고, 전각에 시까지. 이들 결정체를 두루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박혁남 서예전'이라는 타이틀을 건 개인전에서다. 더불어 문인으로서 첫 시집 '당신의 바다'를 출간, 출판기념회도 겸했다. 오는 18~24일 인천종합문예회관 미추홀실을 묵향으로 채운다. 앞서 이달초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같은 작품으로 객을 맞았다.

#. 네번째 개인전
이번 전시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한다. 전시마다 공을 들이지 않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굳이 강조하는 서예가의 말에서 특별함이 읽힌다.

"이번엔 맘 먹고 전시를 했습니다. 일반 관람객은 물론, 예술가들에게 나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특히 조형성에 대해 생각을 한 연후에 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속도감을 더했으므로 오히려 작품에 쏟은 시간들은 사색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작품 수도 예사롭지 않다. 서울 전시에서 내보인 작품이 66점이다. 그럼에도 작품 사이 유사성이 덜하다. 한작품 한작품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말이 따른다.
도록 서문에서 밝힌 작가의 변은 이렇다. "이번 작품들은 나름대로 사고를 통한 이미지 착상과 표현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경험과 계기가 되었다. 서체의 변화나 미술적 요소, 전각의 활용 등 공간에 이미지로 작용할 수 있는 소재를 수용하는데 좀 더 적극적이고 싶었다."

생각으로 쓴 글씨라고 강조한다. 전통 서예의 판본체와 궁체를 근간으로 하되 조형과 선질, 여백미에서 변화를 꾀한다. 때론 질서 정연하게, 때론 직·곡선의 조화를, 때론 속도의 차별을 통해 한지 위를 유영한다. 순간의 느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고가 녹아 있다. 그 결과 회화성이 돋보인다.

"생각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전체적인 형상미에 관점을 두고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설혹 작은 부분에서 틀어지는 듯해도 전체에서는 울림이 나오지요. 기능으로 쓴 글씨가 절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조형미에 대한 고민이 깊은 그다. 독창적이되, 뿌리는 전통에 두어야한다고 거듭 말한다.
큰 스승 산돌 조용선 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한글 궁체의 맥을 있고 있는 스승이다. 전통의 정수를 제대로 배웠다.

"전통을 기반으로 내 것을 세워야 한다고 고민했습니다. 가장 동양적인,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일회적으로 나오는 것은 순간적인 감동은 있을 수 있으나 가치가 절대 오래갈 수 없는 것이지요."
해서 나온 작품은 고전을 바탕으로 한 독창성, 그것이다.

#. 서예와 전각이 있는 시집
옛 선비들이 시·서·화에 능했듯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어를 서예로 옮기는 글빛이다. 먹을 갈아온 세월이 30년이라면 시를 써온 것은 20여년이다. 서예가이자 시인인 것이다.

"시에 몰두하는 시간과 서예에 몰두하는 시간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글씨를 표현하는 것은 마음속 꿈틀거림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
틈틈히 써 두었던 시를 묶어 세차례 동인집을 낸 적이 있다. '나홀로' 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60여편을 담아 '당신의 바다'란 표제를 붙였다. 수록된 작품 중 하나를 골라 따왔다.

시인들이 엮는 시집과는 차별성이 있다. 각각의 시에는 그 느낌이 묻어나는 시어나 그림을 새긴 전각 작품, 특별한 문체의 어구 혹은 단어를 함께 배치했다.
예컨데 시 '섬진강 매화' 옆 페이지에는 매화가 그려진 전각 그림이 있다. 그 옆에 '그대 앞에'라는 문구를 하나 적어넣었다. 글씨체에서 섬진강 매화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이번에 새로 작업한 전각들이 아닙니다. 평소 문학적 이미지를 품고 작업해 놓은 것들이지요. 문구들은 일종의 캘리그래피입니다. 글씨체에 서예적 이미지를 넣어 대중적으로 표현한 글이지요."

#. 작품을 꿈꾸는 공간 '빛 갤러리'
작가 누구나 갖고 있는 바람이라면 자신이 운영하는 갤러리를 여는 일이다. 자신의 작품은 물론이고 좋은 작품들을 원하는 만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글빛은 그 소망을 3년전 풀었다. 남동구 구월동 모래내시장 안에서 2006년 봄 '빛 갤러리'를 만들었다. 그후 작품을 하는 예술가로, 갤러리를 운영하는 전문인으로 동분서주하며 세월을 보내왔다.

"갤러리는 작품을 꿈꾸는 공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지요. 커리큘럼을 만들어 전시를 나열하기보다는 좋은 작품들, 가능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아직 관람객이 많지 않은 부분은 더 노력해야할 점이지요." 말끝에 미소를 단다.

다시 작가의 자리로 돌아와 결심을 말한다. "보여주기 위해서 보다는 내 자신의 기쁨을 위해 작품을 하려 합니다. 문리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몰두하는 분야가 가치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내 스스로 의미를 두고 발전해가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묵과 붓과 더불어 서예가로 살고 픈 그다.

/김경수기자 kk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