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자의 그림책 읽기
▲'우리 가족입니다' - 이혜란 글·그림/사계절

"진짜 '책 읽어주는 할머니' 이모가 썼어?"
아이는 바닥에 배를 깔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고개를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림그리는 손을 멈추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그림책에 눈을 맞춘다.

아이 엄마는 내 대학 동기다. 옥수수처럼 쪽 고른 치아에 웃음이 선선했던 그녀. 릴케를 좋아하고 시를 잘 쓰던 그녀 정현옥.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너 닮았나보지. 너도 그림 그리는거 좋아했잖어."
대학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십년 연애를 깨고 지금의 아이아빠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다들 한마디씩 했었다.
속초서 한다는 결혼식에 가보니 아이아빠는 그녀보다 네 살이 적은 속초 토박이 남자였다. 그녀가 속초에 눌러 살거라고 했을 때도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했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에서였다.
"이러구 사는거 가끔 힘들어."
그녀의 어머니는 13년째 병원에 누워만 계신다. 그녀는 다섯 형제 중에 넷째다.
쓰러져 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녀가 모시기로 마음 먹은 날 그녀는 선을 봤다.
그녀 부부는 금슬이 좋다. 그녀 곁에서 그녀 부모 곁에서 든든한 바람막이 되어주는 내 친구 남편. 이들 가족에게 난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었다.
"이 책은 '우리 가족입니다'란 그림책입니다."

아빠, 할머니 오셨어요.
택시아저씨가 돈 많이 달래요.
할머니가 시골에서부터 타고 왔대요.
(중략)
웩! 할머니 또 뱉어? 만날 사탕 먹고 양치질도 안하니까 그렇 지. 할머니랑 같이 먹기 싫어.

"이 누나, 나쁘다. 할머니한테 막 그럼 안되는데. 나는 우리 할머니한테 안 그러는데…"
한참을 열중해서 듣던 아이의 손놀림이 갑자기 바빠졌다.
"준영아, 이모가 특별히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읽어주는데 잘 들어야지."
"잠깐만 엄마. 요것만 마저 그리고."
책 한권을 다 읽고 나자 아이가 다가오더니 기습 뽀뽀를 한다.
"자, 이모 이건 내가 주는 선물."
아이가 건내주는 이면지속엔 그림책을 읽으며 활짝 웃고 있는 이쁜 아줌마가 있다.
"이게 누구야? 이모가 이렇게 이뻐?"
아이엄마가 나선다.
"엄마가 이뻐? 이모가 이뻐?"
유치하긴. 오랜만에 만난 그녀, 속 깊은 그녀. 효녀인 내 친구 현옥아 니가 훨씬 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