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연단 위에 놓인 물병을 기울여 목을 축인 뒤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왜냐하면 시시각각으로 몰려오는 편두통과 매스꺼움과 싸우느라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네다. 또 그런 생각을 했다 해도 공화국 전방부대는 남조선 군대처럼 집에다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이 없습네다. 그렇다고 외출이나 외박을 얻어 집에 다녀올 수도 없습네다. 그런데도 보위부에서는 매일같이 사람을 불러대며 했던 말을 또 물으며 사람을 겁나게 만듭네다. 그러니 나같이 몸을 다친 사람의 심정이 어드러겠습네까? 하루가 여삼추 같고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공포감에 시달리게 됩네다. 그래서 부모형제의 앞날마저 다 망쳐버리며 내 한 몸 살겠다고 일케 월남하게 되었습네다.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시고 역경에 처한 그 당시의 저의 처지를 널리 용서해 주시면 고맙겠습네다.』

 보충질문을 한 동아일보의 문정수 기자는 인구가 머리를 다쳐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사고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기자들은 인구가 복무하던 후방부대의 복지시설과 주변환경이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비중을 두며 인구의 귀순동기를 더 이상 의심하지는 않았다. 바짝 긴장한 채로 인구의 임기응변 능력에 의존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던 국방부 대변인은 그때서야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음 질문자의 질문을 들었다.

 『서울신문의 왕태연 기잡니다. 곽인구 하사의 식견이나 눈 높이로 오늘의 북한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북한 권력서열 제2인자인 김정일의 실권장악 수준과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구는 메모지에다 질문자의 이름과 질문 주제를 적어놓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질문자를 바라보며 앞에 놓인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현재(1985년 8월) 김정일은 군사·정치·경제 등 공화국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완전한 실권을 차지하고 있습네다. 이것은 저 개인적인 소견이 아니라 군단 정치위원이나 후방부장, 또 직속 상관인 사관장 동지도 늘 길케 말하고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습네다.

 길타면 김정일 동지가 어느 정도 실권을 장악했으며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군사분야부터 그 실례를 들어보겠습네다.

 현재 공화국 인민군대는 김정일 동지의 지시 없이는 일체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네다. 특히 금년 1월부터는 3선 3일(三線三日) 보고체계를 내놓고 그것으로 인민군대의 모든 사업을 감독하고 통제하고 있는 실정입네다.

 길타면 여기서 말하는 3선3일 보고체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3선 보고체계라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네다. 여기서 말하는 3선이란 인민군대 내의 참모부·정치부·김정일 동지 군사무관 계통을 통하여 군대 내의 모든 활동을 보고하면 김정일 동지가 직접 친필 지시를 내려 처리하게끔 만들어 놓은 보고체계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