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남의 일이 아니었다. 운이 나쁘면 그녀의 이웃들에게도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액운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는 이웃들에게는 예사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니었다. 이웃들은 도 안전국에서 내려온 높은 사람들이 금천 역 앞 국영식당으로 들어가 요기를 하는 틈을 타서 두 사람에게 다가가 같이 울어주고, 손을 만져주고, 머리칼을 쓰다듬어 올려주기도 했다. 또 등을 토닥거려 주며 『영실 동무!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형기가 끝날 때까지 잘 견뎌라. 기러다 출소하면 우리 다시 만나 옛날처럼 정답게 살자…』하고 언약하며 품속에 감춰온 계란 삶은 것과 주먹밥, 교화소에 가서 계호원들과 안전원들에게 잘 봐 달라고 뒷방치기사업을 하며 단 며칠이라도 몸 편히 있으라고 황해남도 과일군 술 공장에서 생산되는 과일주 네 병과 홍초 여과담배 20갑, 그리고 떡과 기름사탕 네 봉지를 보자기 두 장에다 들기 좋게 나누어 싸서 마음의 증표로 건네주었다. 강영실과 성복순 피고는 새금천장마당에서 같이 장사하던 이웃들로부터 생각지도 않던 선물 꾸러미를 받은 것이 또 한차례 가슴을 치는지 연방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서럽게 흐느꼈다.
『영순 동무! 순덕 동무! 기러고 미란 동무와 미정 동무! 내가 교화소살이 끝내고 나와 이 고마운 정성을 다 갚을 수 있을 지는 모르갔시요. 길티만 다들 잘 있으라요. 이 고마운 정 평생 잊지 않갔시요….』
『그래. 마음 단단히 먹고 날래 갔다오라요. 설마 죽지 않으면 또 만날 날 있갔디….』
손수건으로 눈 밑을 콕콕 찍어가며 정다운 이웃들과 헤어진 두 사람은 그날 늦게 사리원시에 있는 황해북도 안전국 구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3일 후 감방에서 징역 10년형이 선고된 판결문을 받아 보았다.
10년형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는 교화소 생활을 해봐야 알겠지만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해도 그녀의 나이가 마흔 하나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강영실은 또 울음보를 터뜨렸다. 판결문에는 이견이 있으면 10일 이내에 최고재판소에 상소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사관장이 죽고 없는 마당에 누가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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