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인의 시 '나그네' 전문이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온다.
학교에서는 이 시의 주제를 대개 '체념과 달관의 경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주제보다는 말이 그 본질로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여 이뤄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이해의 요체일 것 같다.
가령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이란 구절은 일찍이 예견하여 보지 못한 시적 황홀경인데 이 별스럽지 않은 이미지인 '술'과 '저녁놀'이 '익고', '타는' 화학작용을 일으켜 보여주는 공감각적 향연은 예사롭지가 않다.
그러나 시 감상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는 바로 '술 익는 마을마다'란 구절이 한 시대의 생활사적 단서도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 옛날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어 마실 수 있는 생활의 여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과 재료, 제조법 등이 달라 각기 특색 있는 술을 빚었던 것이다. 그것이 정착돼 전통주로 이어져 왔던 것인데 1909년 주세법(酒稅法)이 시행되자 '밀주' 신세로 전락은 했지만 궁벽한 곳에서는 계속 빚어 즐겼던 것 같다.
최근 정부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맥이 끊겨버린 전통주의 부활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한국 '소주'가 일본 '쇼주'를 누르고, 막걸리도 기세를 올리고 있는 중이나 전통주 부활로 세계 최대의 '위스키' 수입국이란 오명(?)을 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어쨌거나 과유불급. 나라가 술독에 빠질 순 없다. /객원논설위원